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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인사이드]훈수 나선 김종필… 대선 한수는?

입력 | 2016-09-19 03:00:00

반기문엔 “이 악물고 해라”… 안철수엔 “김대중처럼 국민 설득을”




김종필(JP·사진) 전 국무총리의 ‘훈수 정치’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입버릇처럼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었다”고 말해 왔던 올해 만 90세의 JP가 유력 대선 주자들을 향해 적극적인 조언을 이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일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다.

JP는 반 총장에겐 “결심한 대로 하시되 이를 악물고 해야 한다. 내가 비록 힘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돕겠다”는 취지의 구두 메시지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원내대표는 15일 미국 뉴욕에서 정세균 국회의장과 두 야당 원내대표와 반 총장을 면담했다. JP는 지난달 19일 서울 청구동 자택을 찾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도 안 전 대표와의 냉면 회동을 제안하며 “(DJ처럼) 국민에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확실하게 설명하라. 안 전 대표도 (국민을) 설득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반 총장에게는 관료 출신의 한계를 불식시킬 수 있는 사생관(死生觀)을 가지라는, 안 전 대표에게는 ‘DJP연대’를 결단했던 DJ의 서생의 문제 인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을 주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두 사람의 약점을 ‘콕’ 짚어 주는 훈수를 둔 것이다.

반면 13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청구동을 찾았을 때 JP는 차기 대선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그는 추 대표에게 “야당이 따질 것은 따지고 도와 줄 것은 도와 줘야 한다”며 야당의 역할을 강조했을 뿐 최근 더민주당 내 대세론이 일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1992년 치러진 14대 대선 이후로 충청의 표심은 방향타 역할을 했다. 승리한 편에 충청 표심이 깃들어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JP는 늘 승자의 편이었다. 14대 대선에서 JP는 3당 합당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당선의 기틀을 마련했고, 97년 대선 때는 DJP 연합으로 공동 정권을 만들었다. 2002년 16대 대선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경쟁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 요청을 거절하고 중립을 선언했다. 진보와 보수 일대일 구도에서 JP의 ‘중립 선언’은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JP는 17, 18대 대선에서도 이명박, 박근혜 후보를 차례로 지지하는 등 권력의 흐름을 읽어 내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 줬다.

이 때문에 그가 문 전 대표를 빼고 반 총장과 안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 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두고 반 총장과 안 전 대표를 묶는 제3지대 통합 움직임 또는 개헌과 연관 짓는 관측이 나온다.

JP는 내각제 개헌론의 원조다. 반 총장도 차기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경선 참여가 아닌 제3지대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하다. 박 위원장은 18일 페이스북에 “정치 10단, 정계 최고 원로께서 하신 말씀을 음미하고 있다”고 썼다. JP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야권의 한 중진 의원은 “대선 후보들이 힘을 합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며 “여권은 물론 DJP연대로 야권에서도 상대적으로 반감이 덜한 JP가 그 고리가 될 수 있겠지만 한계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JP가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한 적이 있었지만 내년 대선에까지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해당 대선주자들도 자칫 ‘구시대 정치’에 기댄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