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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서울시, 경복궁 주변 ‘드롭존’ 갈등

입력 | 2016-09-19 03:00:00

관광버스 승객 하차뒤 외곽 대기… 정부 “불법 주정차 해결위해 필요”
市“교통체증 등 되레 악영향” 내년초 주차장 폐쇄땐 혼란 우려




서울 경복궁 주변 도로에 줄지어 서 있는 관광버스. 동아일보DB

추석 연휴를 앞둔 이달 1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옆 도로. 줄지어 선 관광버스 때문에 왕복 4차로 중 1개 차로가 사실상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이들 버스의 앞 유리창에는 빠짐없이 중국인 관광단임을 알리는 종이가 붙었다. 관광버스 운전사 차모 씨(50)는 “다른 곳에 주차했다가 관광단의 일정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빡빡하게 잡혀 있는 전체 스케줄에 차질이 생긴다”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대부분 버스가 시동을 켜 놓아 근처에는 매연 냄새가 진동했다. 경복궁 관계자는 “경복궁 관광버스 주차장이 오전 일찍 만차(滿車)가 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매일 반복된다”고 말했다.

올 6월 정부가 이 같은 서울 도심의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대 고궁 일대에 ‘드롭존(Drop zone)’이라 불리는 관광버스 승하차 지점을 지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실행해야 하는 서울시가 반대하고 나서 사실상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다. 대책 없이 내년 초 계획대로 경복궁 관광버스 주차장이 폐쇄되면 인근의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드롭존이란 정해진 지점에 버스가 정차해 관광객이 내리면, 인근 주차장에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가 관광을 마친 승객을 다시 태우는 방식을 말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도심 내 관광버스로 인한 극심한 정체를 겪었던 일본 도쿄(東京)에서 가장 먼저 도입됐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일본의 인기 면세점 인근 도로에는 대부분 드롭존이 정착돼 있다”며 “주정차 문제가 심각한 고궁 등 도심 주변에 이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드롭존에서 관광객을 내려준 버스들의 대기 장소로 동대문, 독립문 등을 꼽았다.

하지만 서울시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하면서 시행이 요원해졌다. 드롭존 시스템이 잘 정착하려면 △도로가 넓어서 드롭존을 운영해도 주변 흐름에 악영향을 덜 미쳐야 하고 △외곽 주차장에서 오가는 시간이 관광객의 스케줄에 맞출 수 있을 만큼 짧아야 하지만 5대 고궁 인근 도로는 이런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드롭존 대신 경복궁 관광버스 주차장 폐쇄 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드롭존이 잘 운영되고 있는 곳은 강남구 코엑스 일대다. 강남구는 7월 잠실 롯데면세점이 폐점하면서 삼성동 롯데면세점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자 승차 지점(아셈로 면세점 건너편)과 하차 지점(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 앞)을 정했다. 승차 지점에 관광객을 내려준 버스는 5분 거리의 탄천 주차장에서 대기하다 가이드의 연락을 받고 다시 하차 지점으로 와 승객을 태운다.

하지만 이를 서울 도심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우선 영동대로는 왕복 14차로로 1개 차로를 드롭존으로 운영하기 용이하다. 강남구 관계자는 “롯데면세점이 공영주차장 무료 쿠폰을 제공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버스에 대해서는 적극 신고하는 등 민관 협력도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