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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전쟁-이산 아픔 그린 ‘분단문학 거장’

입력 | 2016-09-19 03:00:00

월남작가 이호철씨




분단문학을 대표한 소설가 이호철 씨(사진)가 뇌종양으로 18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1950년 6·25전쟁에 인민군으로 동원돼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뒤 이듬해 1·4 후퇴 때 단신으로 월남했다.

1955년 ‘문학예술’에 단편소설 ‘타향’으로 등단한 이후 60여 년간 250여 편의 소설을 통해 전쟁과 남북 분단 문제를 파고들었다. 장편소설은 동아일보에 연재한 ‘서울은 만원이다’를 비롯해 ‘소시민’ ‘남풍북풍’ ‘門’ ‘그 겨울의 긴 계곡’ ‘재미있는 세상’을, 중·단편소설로는 ‘퇴역 선임하사’ ‘무너지는 소리’ ‘큰 산’ ‘나상’ ‘판문점’ 등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연작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을 꼽았다. ‘남녘사람…’은 1999년부터 폴란드, 일본, 독일, 프랑스, 중국, 미국, 멕시코, 헝가리 등 10여 개국에서 현지어로 번역됐고 2004년에는 이 소설로 독일 예나대가 주는 국제 학술·예술 교류 공로상인 ‘프리드리히 실러’ 메달을 받았다.

고인은 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직접 체험한 작가로서 남북 분단의 비극을 압축된 필치와 세련된 언어로 표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3·1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문학의 현실 참여는 고인의 오랜 화두였다. 2013년 소설집 ‘판문점’ 출간 당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북이 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싶고, 문학으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2011년 본보 대담에서는 “내 문학이 탈향에서 귀향,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여정인 것은 그것이 삶 자체였기 때문”이라며 “뜨거운 작품을 써서 변화를 끌어내는 것, 그게 문학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유신헌법 개헌 반대 서명을 주도했다가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투옥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도 앞장섰다. 문인간첩단 사건은 법원의 재심으로 2011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인은 1998년 8월에 9박 10일간 동아일보 취재진의 일원으로 방북했고 2000년 8월 15일 이산가족 제1차 상봉 때 적십자사 자문위원으로 들어가 누이동생을 50년 만에 만나기도 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 한국소설가협회 공동대표, 한국문인협회 고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말년에 고인과 교류가 잦았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방민호 교수는 “6·25전쟁 이후 한국 분단의 운명을 소설화하는 데 평생을 바친 작가”라며 “‘월남 작가’로서 한국문학의 활발한 생산성과 창조성, 다채로움을 대변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민자 여사와 딸 윤정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1일 오전 5시, 장지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02-2227-7500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