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앙 챔피언십서 21언더 메이저 최소타
신천지를 향해 힘차게 걸어간 그는 여유가 넘쳐 보였다. 한때 세찬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고, 신기록에 대한 부담감도 컸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세계 골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긴 전인지(22·하이트진로)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만이 넘쳤다.
전인지가 18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파71·6470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2언더파를 쳤다. 최종 합계 21언더파 263타를 적어낸 그는 1라운드 공동 선두에 오른 뒤 사흘 연속 단독 선두를 지켜 올해 LPGA투어 진출 후 첫 승을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공동 2위 박성현(23·넵스)과 유소연(26·하나금융그룹)의 추격을 4타 차로 따돌렸다. 우승 상금은 48만7500달러(약 5억5000만 원).
지난해 이 대회에서 컷 탈락했던 전인지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1992년 벳시 킹이 수립한 LPGA투어 메이저 대회 72홀 최소타 기록 267타를 24년 만에 넘어섰다. 이날 전인지의 최종 스코어 21언더파는 남녀 메이저 대회를 통틀어 최다 언더파 기록이다. 전인지는 LPGA투어에서 4명의 선수가 남긴 종전 기록 19언더파뿐만 아니라 제이슨 데이(호주)와 헨리크 스텐손(스웨덴)이 수립한 남자 메이저 최다 언더파 기록 20언더파까지 깨뜨렸다.
전인지는 1998년 박세리 이후 LPGA투어 사상 두 번째로 첫 번째, 두 번째 우승을 모두 메이저 대회에서 올리는 진기록도 세웠다. 전인지는 LPGA투어 비회원이던 지난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빅 리그’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날 전인지는 3번홀과 8번홀에서 버디를 낚으며 6타 차 단독 선두로 질주한 뒤 14번홀 보기를 15번홀 버디로 만회하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그는 18번홀에서 3m 가까운 까다로운 파 퍼팅을 성공시켜 대기록을 완성했다.
전인지의 별명은 ‘메이저 퀸’이다. 지난해 국내와 해외에서 거둔 8승 가운데 5승을 메이저 타이틀로 채울 만큼 큰 무대에 강했다. 올해 LPGA투어에 뛰어든 뒤 지난주까지 우승은 없었어도 9차례 톱10에 들며 평균 타수 2위(69.79타)에 올라 일찌감치 평생 한 번뿐인 신인상을 예약했다. 뜻하지 않은 허리 부상으로 3월에 한 달 가까이 공백기를 가졌던 그는 지난달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공동 13위로 마친 뒤 최근 LPGA투어 2개 대회에서 연속 톱10에 드는 상승세를 유지한 끝에 메이저 대회의 대미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전인지가 정상에 서면서 한국 선수들의 6년 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 행진도 이어가게 됐다. 전인지는 다음 달 국내 투어인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 출전해 시즌 처음으로 국내 팬 앞에 나선다.
국내 최강자 박성현도 체력 저하를 견뎌내며 나흘 내내 우승 경쟁을 펼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7승을 거두며 단일 시즌 최다 상금 기록(약 12억897만8590원)을 갈아 치운 박성현은 이번 대회 준우승에 힘입어 LPGA투어 직행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15번홀에서 5번 아이언으로 2온에 성공한 뒤 가볍게 이글을 낚은 박성현은 올해 LPGA투어에 6번 출전해 60만 달러가 넘는 상금을 벌어들여 내년 투어카드가 보장되는 연말 랭킹 40위에 가볍게 진입하게 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