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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방에 사는 엄친아 박재민~ Park jaemin

입력 | 2016-09-19 14:12:00


절 방에 사는 엄친아
비보이, 교수, 스노보드 선수, 여기에 번역자까지 명함에 더한 화려한 스펙의 배우 박재민. 4년째 절 방에 사는 이유가 궁금했다.


배우 박재민(33)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남자다. 청소년 시절 비보이 그룹에서 활동하다 행사 MC를 맡게 됐고, 그걸 계기로 방송에 데뷔했다. 춤과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 덕에 〈출발 드림팀 시즌2〉처럼 몸을 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이 대단했고, 연극 무대와 영화·드라마 촬영장을 오가며 연기자로서의 경력도 탄탄히 쌓았다. 최근작은 SBS 〈내 사위의 여자〉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박재민을 얘기한다면 아직 그에 대해 반도 모르는 것이다. 그는 전국체전에서 서울시 대표로 뛰는 스노보드 현역 선수인 데다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무용예술계열 전임 교수라는 직함도 있다. 최근에는 영어 번역자로 변신해 〈사랑이 구한다〉라는 포토 에세이집까지 냈다. 알고 보니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 살면서 서울대를 나온 엄친아, 하지만 지금은 집을 나와 4년째 절에서 산다. 이쯤 되니 박재민이라는 남자가 보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유난히 더웠던 한여름의 평일 오후. 박재민과 인터뷰를 위해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보다 민소매 사이 드러난 구릿빛 팔 근육에 먼저 시선이 갔다. “꼭 소개팅하는 것 같네요.”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아, 이 매력남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 대체 명함이 몇 개인가요.

타이틀 수집이 취미예요(웃음). 좋아하는 일을 좇아서 살다 보니까 명함이 여러 개가 생긴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이죠. 시기에 따라 마음에 드는 타이틀이 계속 바뀌곤 했는데 요즘 가장 마음에 드는 타이틀은 ‘배우’예요. 작품을 만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고, 그럴수록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더 많이 생기거든요. ‘기대되는 내일’을 만들어주는 직업이라고나 할까요.

▼ 최근에 번역서를 냈다고 들었어요.

부모님이 두 분 다 교수인데 미국 유학 시절에 저를 낳으셨어요. 여섯 살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다섯 살 위인 형이 제게 어느 날 그러더라고요. 언젠가 영어는 우리 인생에 중요한 ‘어드밴티지’가 될 테니 앞으로 영어로 대화하자고요. 형과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함께 보면서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자연스레 영어를 접할 기회가 많았던 거죠. 형은 현재 UN 직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머물고 있어요.

▼ 소문대로 ‘엄친아’인가요.


특별히 말썽을 피운 적은 없었지만 공부보다는 춤이나 운동을 더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초등학교 때 비보잉을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는 부모님께 독서실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춤 연습실을 드나들었죠. ‘엄친아’는 아니에요.

▼ 설마요, 그럼 서울대는 어떻게 간 거예요.


하루 종일 공부한다는 애가 성적이 안 오르니 부모님 입장에선 답답하셨나 봐요. 그동안 춤추러 다녔다는 사실을 고3 때 처음 고백했어요(웃음). 부모님께서 춤을 업으로 삼더라도 이론이 밑바탕이 되면 훨씬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아서 그날부터 하루에 18시간씩 앉아서 수능 공부에 매진했더니 3개월 동안 수능 점수가 딱 120점 오르더라고요. 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찾아서인지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 그래서 대학을 가서는 원 없이 춤만 췄나요(웃음).

대학에 가선 오히려 공부만 했던 것 같아요. 매 학기 장학금을 받았고 복수 전공까지 해서 체육교육과 학위와 경영학 학위를 땄어요. 졸업할 때도 성적 우수로 우등 졸업을 했고요. 행정대학원에도 진학해 정책학을 수료한 상태예요.


▼ 방송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언제부터예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비보잉 대회의 행사 MC를 맡았는데, 그 행사가 전파를 타면서 제가 TV에 나오는 사람이 됐어요. 그땐 부모님 몰래 춤을 추러 다니던 때라 혹시라도 TV를 보실까 봐 조마조마했었죠(웃음). 2010년에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로 방송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서 ‘이 일이 내 천직일 수도 있겠다’ 싶었죠.

▼ 원래 성격이 굉장히 외향적인가 봐요.

예전엔 그랬죠. 그런데 2012년 예능 프로그램 〈짝〉에 출연하는 도중 결혼 기사가 잘못 나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결혼을 앞둔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 숨기고 매칭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오해를 받았거든요. 결혼 상대로 지목된 여성은 사실 예전에 교제했던 친구였어요. 그때 저는 솔로인 상태로 프로그램에 출연한 거였고, 그게 방영될 무렵에 ‘그 친구와 다시 만나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죠. 다시 만난다면 결혼을 전제로 할 생각이었고요. 기자 친구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놨는데 그게 결혼 기사로 와전이 돼 한동안 방송을 쉬게 됐어요. 결혼은커녕 연애도 잘 안됐고요. 그 일 이후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 그무렵 절에 들어갔군요.

스마트폰도 없애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은 채 폐인처럼 지냈죠. 부모님께서는 자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죠. 하루는 불교 신자이신 어머니께서 서울 관악산 성불암에 방을 얻어 거기서 지내라고 권하시더라고요. 혹시라도 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그러셨나 봐요.

▼ 절에 들어가 사니 마음이 편해지던가요.

아니요. 좁은 반지하 절 방에서 혼자 지내며 신세를 한탄했고, 장롱 가득 술을 채워놨었죠. 생활은 그대로인데 원효대사 생각은 나더라고요(웃음).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다음 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잖아요. 진짜 힐링은 오히려 다른 데서 찾았어요. 다이빙대 위에서 셀레브러티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콘셉트의 스포츠 리얼리티 쇼 〈스플래시〉에 출연한 것이 큰 도움이 됐죠. 어떤 사람 말로는 다이빙대 위에서 뛰어내리며 느끼는 감정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의 느낌과 같다고 하더라고요. 매일 2백 번씩 뛰어내리면서 1년 가까이 있었던 우울증이 일주일 만에 사라졌어요.

▼ 그런데 아직도 절에 산다면서요.


네. 불편하지 않냐고 물으시는데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저는 아직도 2G 폰을 써요. 지인들의 전화번호도 저장해두기보다는 외우는 편이죠. 뭐랄까요, 넓진 않지만 깊어지는 느낌이에요. 기계나 문명이 발달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걸 더 깊이 있게 느끼고 싶어요.

▼ 바쁜 와중에 책을 번역한 이유도 그래서인가요.

맞아요. 언어와 문화, 세대, 가치관이 달라도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를 찾고 있어요. 제가 번역한 책 〈사랑이 구한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도 사랑이라는 절대적이면서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얼굴이 잘 알려진 연예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철학을 사람들과 나누고 기부나 헌혈, 봉사와 같은 실천도 당연히 해야 하고요.

▼ 박재민이 경험한 ‘사랑’은 어때요.

힘든 시기를 겪으며 저를 아끼는 부모님의 사랑을 절절하게 느꼈어요. 부모님은 제게 단 한 번도 “너 그러면 안 돼”하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저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고 마냥 기다려주셨죠. 돌이켜보면 저는 부모님의 사랑처럼 ‘대가 없이 주기만 하는 사랑’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직은 그걸 준비하고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 박재민에게 다가올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여자 친구를 사귀면 십자수를 해서 선물하고, 기념일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타입이에요. 의외죠?(웃음) 그런데 그 사건 이후 4년간 연애를 못 해봤어요. 다시 연애를 시작한다면 상대방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많이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이제 더 이상 이별은 하고 싶지 않네요. 너무 신중해진 탓일까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더 안 생기나 봐요. 아, 그래도 평생 절 방에 혼자 사는 건 싫어요!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헤어 도형(에이바이봄)
메이크업 재희(에이바이봄)

editor 정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