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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반찬을 간식-술안주로… “고향집 ‘부각’이 시장명물 됐죠”

입력 | 2016-09-20 03:00:00

[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5>광주 1913송정역시장 장효근씨




지난달 19일 광주 광산구 1913송정역시장에서 만난 ‘느린먹거리 by 부각마을’ 장효근 사장은 “직장 다닐 때와 비교하면 몸은 지금이 더 힘들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마음은 즐겁다”고 말했다. 광주=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장효근 씨(31)가 어렸을 때,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는 봄이면 집집이 짭조름하고 맛있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동네 할머니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김, 다시마 따위의 해조류를 말리고 튀겨 ‘부각’을 만들었다. 바닷가가 아닌 내륙에서는 해조류를 오래 두고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튀겨서 장기간 두고 먹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각은 여름 내내 밥상에 올랐다. 찬물에 밥을 말아 한 숟갈 입에 넣고, 부각 한 조각을 씹으면 입 안에 짠맛과 함께 바다 향이 가득 퍼졌다. 어릴 적 기억 한구석을 채웠던 그 맛이 장 씨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줄은 몰랐다.


○ 직장 그만두고 아내와 창업

장 씨는 2009년 노지현 씨(28)를 만나 결혼해 광주에 정착했다. 장 씨의 어머니는 1년에 한두 번씩 남원에서 부각을 만들어 아들 부부에게 보냈다. 손이 큰 어머니는 늘 부부가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이 보냈고, 장 씨는 아파트 주민들과 부각을 나눠먹었다. 아파트 온라인 커뮤니티에 ‘어머니께서 부각을 보내주셨는데 드실 분이 계시면 같이 나누고 싶다’는 글을 올릴 때마다 ‘저도 달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다.

장 씨는 “남원에서는 너무 익숙하게 먹던 음식인데, 이사 온 광주에서는 부각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 신기했다”고 말했다. 부각 맛에 빠진 몇몇 주민들이 “돈을 줄 테니 박스로 더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이왕이면 판을 벌여보자!’

2014년 10월. 장 씨는 1년 반가량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장 씨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회사라는 경직된 조직에서 누군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맞춰 하는 일은 즐겁지 않았다. ‘그래도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는 했지만 ‘언젠가 나만의 가게를 열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미술 등 문화활동 강의를 하던 아내 노 씨는 장 씨의 퇴사 결심을 듣고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기투합한 부부는 집에서 김과 다시마를 프라이팬에 튀겨가며 부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침 노 씨는 문화활동 일을 하며 젊은 주부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어린 자녀를 둔 주부들은 저염식과 건강식단에 관심이 많았다. 남원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부각은 밥반찬이라 다소 짠맛이 강해 많이 먹기는 힘들었다.

부부는 소금을 줄이고 그 대신 다양한 육수로 맛을 내는 ‘새 부각’을 만들기로 했다. 장 씨는 “아내와 같이 쌀을 불리고, 맛을 낼 새 육수를 10여 가지 만들고, 찹쌀 풀을 바르고, 말려 튀기는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고 말했다. 좀 덜 짜고, 아이들에게도 안심하고 먹일 수 있고, 과자나 술안주처럼 편하게 먹는 부각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한여름에도 펄펄 끓는 기름과 싸우는 동안 손 여기저기에 화상 상처가 늘어갔다. 그러는 사이 부부가 만든 부각은 맛이 깊어졌다.

광주 신혼집과 남원 고향집을 오가며 부각을 만들던 부부는 광주 북구 양산동에 조리작업장도 얻었다. ‘느린먹거리 by 부각마을’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판매를 개시했다. 맛을 본 고객들의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장 씨 부부의 부각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 전통시장에 둥지를 틀다

지난달 19일 기자가 광주 광산구 1913송정역시장 장 씨의 가게를 찾아갔을 때 장 씨는 없었다. 약속시간보다 2시간을 훌쩍 넘겨 헐레벌떡 뛰어온 장 씨는 “갑자기 추석 주문 물량이 밀려들어 피치 못하게 늦었다”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장 씨를 기다리는 동안 아르바이트생이 건네 준 부각을 먹었다. 입 안에 넣고 깨물자 ‘바삭’하고 씹혔고, 무척 순한 짠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커피, 식혜 등도 함께 파는 장 씨의 가게는 반찬가게라기보다는 카페에 가까웠다. 옆 테이블에는 외지에서 온 듯한 여성 관광객 두 명이 차와 부각을 먹으며 수다를 떨다 돌아갔다. 둘은 부각을 먹는 내내 “맛있다” “신기하다”며 감탄했다.

시장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를 묻자 장 씨는 “전통음식, 전통시장에 원래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장 씨는 창업 전에도 전국의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인과 점포를 관찰했다. 마침 과거 송정역전시장을 지금의 1913송정역시장으로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 소식을 알게 됐다. 장 씨는 ‘전통시장과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의 거리’라는 콘셉트로 프로젝트에 응모했고 지금의 점포를 분양받아 부각마을을 열었다.

지금은 고객들에게 맛도 인정받고, 지역 명소가 될 정도로 사업이 궤도에 올랐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장 씨는 “아내와 둘이서 처음 부각을 만들기 시작할 때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맛을 내려면 조금씩 만들어서는 도저히 안 됐기에 한번 새로운 조리법을 실험할 때마다 1, 2박스씩 만들어야 했다. 장 씨는 “맛이 있으면 다행히 사람들과 나눠먹을 수 있었지만 실패한 부각은 박스째로 버리거나 아내와 둘이 먹어야 했다”고 말했다.

장 씨 부부는 부각마을을 단순한 ‘먹을거리 사업’이 아니라 문화기획활동으로 넓혀갈 구상을 하고 있다. 아내의 특기를 살려 부각이라는 전통음식과 문화활동을 접목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것. 지금도 장 씨의 가게에서는 주부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포장 강좌’ 등이 이뤄지고 있다. 장 씨는 “가게 이름도 아내가 반년 동안 머리를 쥐어짜 만들어낸 것”이라며 “아내는 가장 신뢰하는 동업자이자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말했다.

장 씨는 청년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조건으로 상상력과 열정을 꼽았다. 그는 “청년 창업은 그저 남는 돈이 있어서 가게를 열고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빠듯한 사정에서도 열정을 가지고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