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입학 1년도 안돼 일반고로 탈출러시

입력 | 2016-09-20 03:00:00

[고졸 취업 좁은문]<下>‘先취업 後진학’ 유명무실
‘취직 장려’ 정부 말만 믿고 특성화고 왔지만…




이모 군(17)은 2015년 서울의 한 특성화고에 입학한 지 1년도 안 돼 일반고로 전학했다. 그는 “기술을 배워 취업해도 대학을 못 나오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취업 후 재직자특별전형을 통해 대학에 가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동갑인 친구들보다 훨씬 늦어질 게 뻔하다’는 판단에 마음을 바꿨다.

특정 분야의 전문 인재 및 직업인 양성을 위한 특성화·마이스터고에 입학했다가 대학 진학을 위해 일반고로 전학하는 학생이 매년 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정부는 ‘선(先)취업 후(後)진학’을 밀어붙이면서 오히려 이들 고교의 입학정원 비중을 늘려 나갈 계획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정책 수정 내지는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늘어나는 탈(脫)특성화고

동아일보가 1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교육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 특성화고 학생 가운데 입학한 지 1년도 안 돼 일반고로 전학을 가는 학생이 2013년 1156명에서 2015년 1549명으로 약 3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특성화고 입학생 10만여 명 중 매년 1∼1.5%가 입학한 지 1년도 안 돼 취업을 포기하고 일반고로 ‘탈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엑소더스를 광역자치단체별로 보면 같은 기간 일반고로 전학을 가는 특성화고 1학년 학생 수가 늘어난 곳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2개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은 특히 서울 인천 등 수도권 특성화고에 집중됐다. 서울은 전학생 수가 2013년 382명에서 점점 늘어 2014년 458명, 2015년 508명으로 증가했고, 인천은 2013년 48명에 불과했던 전학생이 2014년 83명, 2015년 203명으로 급증했다.

이를 두고 기업에서 열악한 고졸 취업자 처우가 개선되고 대졸 취업자와의 차별이 줄어들지 않는 한 학생들의 목표는 ‘대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윤창훈 충청대 경영회계학부 교수는 “독일에선 고졸 취업자가 4년간 근무하면 대졸자와 임금이 같아지니 대학 대신 취업을 택하지만, 한국 현실은 그렇지 않아 학생들이 어떻게든 대학에 가려고 한다”고 했다.

문제는 특성화고에서 일반고로 전학하는 학생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정부 정책은 현실과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 4월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전체 고교생 수는 2015년 기준 178만 명에서 2022년 122만 명으로 56만 명(31.5%)이나 줄어든다.


○ 정부의 ‘거꾸로’ 정책

하지만 교육부는 “직업 교육을 확대하겠다”며 현재 전체 고교생의 19% 수준인 특성화·마이스터고 학생의 비율을 2022년까지 30%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2015년 기준 11만3000명 수준인 특성화·마이스터고 입학생 수는 2022년에도 현재 수준으로 유지된다.

이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는 특성화고 정원을 유지한다는 정부 정책이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특성화고 학생의 일반고행이 급증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특성화고 공동화 현상’을 막기 위해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현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졸업 후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등 좋은 일자리로 취업을 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취업 후 임금이나 승진, 복지혜택 등에서 차별을 당하지 않는지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했다. 또 박 위원은 “학생들이 특성화고에서 충실히 기술을 익히기만 하면 기업에 가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업과 학교가 산학 협동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장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해당 직무에 종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봇을 개발할 때도 납땜 기술 등 기초 직무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교사 B 씨는 “막연히 자동차를 만드는 게 멋있다고 생각해 특성화고에 왔는데 현장에서 작업복 입고 기름때 묻혀 가며 일하니까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교사가 학생들에게 직무수행 프로세스를 이해시키는 것도 학생들의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노지원 zone@donga.com·임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