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밤은 연인들의 시간이다. 왜 그런지 설명할 필요 없으리라. 그래서 달은 감미로움이기도 하다.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은 호수 표면에서 사뿐히 부서지는 달빛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한다. 인상주의 음악이라 할 만하다. 이 곡을 듣다 보면 감미로움은 미각이라기보다 청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인들에게는 촉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음악가 장세용의 ‘달에서의 하루’란 곡이 있다. 이 곡은 뉴에이지 ‘달빛’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는 톡톡 튀는 감미로움이 느껴진다. 재미있는 것은 곡의 제목이다. 현대의 달은 빛으로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서 밟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달에서는 푸른색의 지구가 보인다. 인공위성 사진의 지구를 하늘에 띄웠다고 보면 된다. ‘지구빛’은 호수에 부딪혀 부서지지 않아도 그 자체로 숨 막히도록 아름답다. 달에서 본 지구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 달은 자전 주기와 지구 주위를 도는 공전 주기가 같다. 이 때문에 지구에서는 달의 한쪽 면만 볼 수 있다. 달이 공전하면서 같은 속도로 자전을 하기 때문에 달에서 보기에 지구는 정지 위성같이 항상 그 자리에 있게 된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달을 본 첫 번째 과학자다. 그가 본 것은 울퉁불퉁한 표면의 모습이었다. 완벽한 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2000년간 믿어온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린 거다. 달의 과학자라면 겪지 않았을 충격이다. 뉴턴은 울퉁불퉁한 돌덩어리인 달이 왜 지상계의 다른 물체처럼 땅으로 낙하하지 않는지 의문을 가졌다. 뉴턴의 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달은 낙하하고 있지만 지상에 닿지 않을 뿐이다. 뉴턴이 달에 살았다면 이런 답을 찾기 어려웠을 거다. 달에서 본 지구는 하늘에 그냥 고정되어 떠 있으니까. 설마 지구가 달 주위를 도는데, 하필 달이 똑같은 주기로 자전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과학자들은 우연을 싫어한다. 뉴턴 역시 지구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한다.
달은 불길한 것이자 축제의 대상이다. 달빛 속에서 프러포즈를 할 수 있지만 곤히 잠든 적들을 향해 기습공격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달을 보며 이야기를 만들지만, 또 누군가는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다. 달에서 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도 하나의 행성이다. 달에서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올바른 세상이다.
살다 보면 남과 다툴 일이 있다. 여기에는 자기가 옳고 남은 틀리다는 생각이 깔린 경우가 많다. 지구에서 보는 우주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달에서 본 우주도 옳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 위에 정지해 있는지도 모른다. 달에 한 번 갔다 오는 것은 어떨까.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