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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축사노예 없게… 집안 장애인 실태조사

입력 | 2016-09-20 03:00:00

전체 등록인의 99%인 246만명 차지… 정부, 저소득층 1만명 인권 우선점검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서성이다가 집으로 향하는 30대 초반 지적장애인 A 씨의 발걸음이 무겁다. 함께 사는 남동생은 “맘에 안 든다”며 A 씨의 옆구리를 발로 차기 일쑤다. 누나는 물건으로 머리를 때린다. 온몸의 멍을 수상히 여긴 활동보조인의 신고로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가 상담하는 과정에서 A 씨는 “가족은 내가 동네북인 줄 안다. 집이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최근 충북 청주시의 축사와 타이어 수리점 등에서 재가(在家) 장애인을 노예처럼 부리고 학대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이들에 대한 인권 방치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가 장애인은 전체 등록 장애인 249만406명 중 245만9184명(98.7%)에 이르지만 3년마다 전수 점검 대상이 되는 시설 거주 장애인과 달리 정부가 인권 실태를 한 번도 점검하지 않았다. ‘축사·타이어 노예’ 사건의 피해자 고모 씨(48)와 김모 씨(42)도 재가 장애인으로 분류돼 점검을 피해갔다.

서울에 사는 뇌병변장애인 B 씨(48·여)는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가 외출을 허용하지 않고 집 안에서 휠체어도 못 타게 해 집에 갇혀 벽을 쳐다보는 게 일상의 전부다. B 씨처럼 일상생활 기능이 떨어지고 빈곤한 경우 보호자가 장애인에게 폭언을 일삼거나, 반대로 장애인이 보호자를 폭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재가 정신장애인 534명을 조사했더니 139명(26%)은 가족과 살지 않고 장애인시설이나 요양시설에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20일부터 한 달간 재가 장애인의 인권 실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우선 △장애 등급 재판정 시기를 한 번이라도 넘겼거나 △부모도 장애인이거나 사망해 제대로 보살필 사람이 없고 △기초생활수급자 등 소득 수준이 낮은 1만여 명을 먼저 점검한 뒤 학대 정황이 포착되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하지만 장애인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안 그래도 업무가 과중한 읍면동 주민센터에 점검을 맡기면 전화만 한 통 걸어보고 ‘이상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 때문에 지역 사회의 인권 의식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2010년 ‘차고 노예’, 2014년 ‘염전 노예’ 사건 이후에도 정부가 인권 침해 사례를 여러 건 적발했지만 피해자 대다수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염전 등 원래 거주지로 돌아갔다.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장애인 12만5567명(추산)은 이번 특별 점검에서도 제외됐다. 등급 재판정(2년 주기) 절차조차 밟지 않는 미등록 장애인은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됐을 우려가 높다. 충북도가 지난달 20일부터 벌인 자체 조사에서 적발한 강제 노역 피해자 중에도 미등록 장애인이 여럿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문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차장은 “정부는 ‘사안이 잠잠해질 때까지만 모면하자’고 생각하지 말고 인권 침해 감시 체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