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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집주인에 막힌 미납 국세 열람

입력 | 2016-09-20 03:00:00

전월세 보증금 보호위한 제도… 임대인 동의거부땐 속수무책
전문가 “열람 의무화로 피해 막아야”




최근 서울 성동구에서 전세 아파트를 구하던 김모 씨(43)는 거래 직전까지 갔다가 취소되는 낭패를 당했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집주인이 세금 체납자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김 씨는 “전에 살던 집에서 주인이 체납한 세금 때문에 전세보증금을 떼인 적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집주인이 기분 나빠하기 때문에 곤란하다. 그런 요구를 하려면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며 손사래를 쳤다.

건물 임대인이 내지 않은 세금으로 인한 임차인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미납 국세 열람 신청제도’가 이처럼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납 국세 열람 신청제도는 주택·상가 임대인이 납부해야 할 국세를 납부하지 못해 주택·상가가 압류돼 공매처분 되는 경우 국세 징수로 보증금이 추징당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 2003년에 도입됐다. 임대인의 동의를 얻고 신분증 사본과 서명을 받아 관할 세무서에서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을’의 위치에 있는 임차인이 ‘갑’인 임대인에게 열람 동의를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부동산 거래 때 고지할 의무가 없다 보니 임대인이 거부할 경우 속수무책이다.

이 때문에 집주인의 세금 체납 사실을 모른 채 전세 계약을 한 뒤 압류가 진행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강동구에 전세로 신혼집을 차린 박모 씨(33)는 올해 초 법원으로부터 경매통지서를 받았다. 결국 보증금 2억 원 중 5000만 원만 돌려받은 채 집에서 쫓겨났다. 집주인의 세금 체납 때문이다. 박 씨는 “국세 우선 변제의 원칙이 적용돼 우선순위에서 밀려 집주인의 세금을 대신 내준 셈이 됐다”고 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종합소득세와 상속세 증여세를 비롯한 5억 원 이상 고액·상습 개인체납자는 지난해까지 총 1만1163명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종구 의원에 따르면 올해 1∼8월 미납 국세 열람 건수는 184건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같은 시기 전국 전월세 거래량은 98만3184건. 0.02%의 임차인만 집주인의 미납국세를 열람한 것이다. 강남구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임대인이 미납 국세 열람에 동의하지 않아 잠정적인 임차인을 놓친다고 해도 전세 수요가 많기 때문에 아쉽지 않은 심정”이라며 “요리조리 따져보며 신중하게 전세 계약을 하려는 사람들이 이 제도에 대해 많이 물어보지만 결국 열람해 보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거래 때 임대인이 중개인에게 미납 국세 확인 동의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후 계약 단계에서 임차인이 요구하면 체납 세액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집주인의 체납 국세 내용만 알아도 억울한 세입자가 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좋은 제도를 갖추고도 전혀 활용하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국세청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