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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LPGA… 홀로서기로 더 강해진 전인지

입력 | 2016-09-20 03:00:00

2연패 노린 US오픈 컷 탈락에 충격,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부모님과 결별… 외국인 매니저 채용 ‘투어 독립 선언’
영어-문화 빨리 배워 마음 안정 찾고 훈련-숙식 등 새 환경 적응력 키워




전인지가 18일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역대 메이저 대회 최소타 기록으로 우승한 뒤 대회 전통에 따라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린 스카이다이버가 전달한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전인지는 “내 인생의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더 노력하겠다. 다음 도쿄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LPGA 제공

전인지(22·하이트진로)는 18일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역대 메이저 대회 최소타 기록(21언더파 263타)으로 우승한 뒤 가족과 팀원에 대한 고마움부터 표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개인 종목인 골프에서 보기 드문 소감을 밝힌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전인지는 7월 2연패를 노렸던 US여자오픈에서 컷 탈락하며 충격에 빠졌다. 전인지는 지난해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직행의 길을 열었다. 그에게는 신데렐라 탄생의 무대였기에 아쉬움이 컸다.

당시 전인지는 부모님, 스승인 박원 골프아카데미 원장 등과 상의해 ‘홀로서기’라는 결정을 내렸다. 올해 LPGA투어 진출 후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뒷바라지하던 아버지, 어머니는 귀국했고, 그 대신 호주인 여자 매니저, 북아일랜드인 캐디와 투어 생활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 전종진 씨는 “부모와 떨어져 강해졌으면 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영어가 부족한 부모님이 딸에게 괜한 짐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겨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전인지는 부모 없는 낯선 타향에서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숙식을 해결하거나 훈련과 이동 스케줄 관리 등을 위해선 매니저, 캐디와 머리를 맞댔다. 이런 과정을 거쳐 LPGA투어 신인 전인지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키웠다. 전인지의 매니저는 골프 선수 출신으로 박희영의 캐디였던 카일리 프랫(39)이다. 전인지는 “매니저 덕분에 외국 선수들과 잘 어울리게 됐다. 문화도, 영어도 빨리 배우고 있다”며 웃었다. 캐디 데이비드 존슨은 대기록 달성 여부가 걸렸던 4라운드 18번홀 파 퍼팅을 앞두고 전인지에게 “만약 네가 파를 기록하면 내가 저녁을 살게”라는 말을 건네며 평정심 유지를 도왔다. 시상식 후 전인지는 박 원장, 매니저, 캐디 등과 프랑스 송아지 요리로 뒤풀이를 했다.

골프 선수 출신 전담 매니저 카일리 프랫(왼쪽), 덴마크인 동료 선수 페르닐라 린드베리(오른쪽)와 포즈를 취한 전인지. 박원 골프아카데미 원장 제공

전인지는 특유의 친화력으로도 유명하다. LPGA투어의 한 관계자는 “투어 사무국에서 실시한 ‘동료와 직원이 뽑은 사랑스러운 선수’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전인지가 톱3에 들었다”고 칭찬했다. 에비앙 챔피언십이 끝난 뒤 김세영, 리디아 고 등 한국(계) 선수뿐 아니라 브룩 헨더슨(캐나다) 등 많은 동료 선수들이 전인지에게 샴페인과 물 등으로 축하 세례를 퍼부었다. 리디아 고는 “인지 언니는 여자 골프 홍보대사다. 항상 웃으면서 동료들을 생각해 준다”고 말했다.

IQ 138의 수학 영재였던 전인지는 메이저 대회에서 강한 이유에 대해 철저한 사전 준비와 긍정적인 마인드라고 밝혔다. 에비앙 챔피언십을 앞두고 그는 스윙뿐 아니라 심리적인 안정 회복에 집중했다. 전인지는 “나는 100점 만점에 96점 정도로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우승이 없어 실망하는 분위기여서 부담이 컸다. 그럴수록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골프를 즐기려 했다. 기술적인 부분에선 어드레스에서 오른쪽 어깨가 앞으로 나오면서 공이 왼쪽으로 말리는 현상을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19일 발표된 세계 랭킹에서 리디아 고,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에 이어 개인 최고인 3위로 뛰어올랐다. 한국 선수로는 가장 높은 자리다.

20일 귀국하는 전인지는 다음 주 일본여자오픈과 다음 달 국내 투어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2주 연속 타이틀 방어를 노린다. 두 대회 모두 메이저 대회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