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매출 늘어도 수익 주는
‘실속 없는 장사’ 많은 상황
전통의 제약사들 앞장서서
신약 R&D 비용 대폭 늘려
업계구조조정과 함께
다양한 연구로 밝은 ‘미래’ 예약
경기도 안산에 있는 보령제약 생산공장에서 연구원이 약품 생산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동아일보DB
공격적으로 R&D에 투자
지난해 한미약품(1조3175억 원)과 녹십자(1조478억 원)는 처음으로 연 매출 1조 원을 넘겼다. 유한양행(1조1287억 원)을 포함해 국내 ‘1조 원 트로이카’를 이뤘다. 상위권 업체들은 올해 상반기까지 이 흐름을 이어나갔다. 10대 제약사들의 매출은 작년 상반기보다 평균 13.9% 늘었다. 상반기 매출액 1위는 유한양행(6047억 원)이었으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5% 늘었다. 한미약품은 6.9%, 녹십자는 12.4% 증가했다. 종근당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보다 41.9% 매출이 뛰었다. 이처럼 상위 10대 제약사 대부분이 작년보다 매출이 늘었다.
하지만 한미약품과 LG생명과학을 제외하고 대부분 상위권 업체들의 영업이익은 줄었다. 유한양행과 종근당은 영업이익이 각각 5.0%, 7.8% 줄었고, 녹십자는 25.6% 줄었다. 이는 신약 개발을 위해 업체들이 R&D 비용을 늘렸기 때문이다. 업계는 상반기 R&D 비용을 작년보다 최대 30% 더 늘리는 등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유한양행은 올해 2분기(4∼6월) R&D 투자를 작년 동기 대비 25% 늘렸다. 이 기간 녹십자도 20% R&D 투자를 늘렸다. 한미약품도 2분기 매출(2345억 원)의 17.2%(403억 원)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종근당의 효종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DB
상위권 업체들 신약 개발에 박차
올해 2분기에 분기 최초로 200억 원이 넘는 R&D 비용(203억 원)을 투자한 유한양행은 2018년까지 혁신신약 3개 이상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현재 26개 신약후보물질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7개는 임상 2상과 3상이 진행 중이다. 특히 대사·내분비, 면역·염증, 항암제 등 3대 질환군에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7월 중국 제약회사 뤄신에 폐암치료 신약 후보물질을 수출(1350억 원 규모)하기도 했다.
녹십자는 지난해 11월 국내 제약사 중 처음으로 4가 독감 백신(4가지 독감을 예방하는 백신) ‘지씨플루 쿼드리밸런트’를 내놓았다. 올해 초에는 수출을 목표로 1인용 싱글도스, 10인용 멀티도스 등 제형을 다양화해 선보이기도 했다. 녹십자 관계자는 “그동안 백신으로 1600억 원이 넘는 수출 성과를 올렸다”며 “다국적 제약사와 경쟁할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SK케미칼도 백신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 업체는 백신 사업 인프라 구축과 연구개발에 4000억 원의 비용을 투자했다. 2012년에는 경북 안동에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 공장(L하우스)를 짓기도 했다. 이 공장의 연간 최대 생산량은 1억4000만 도스에 달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SK케미칼은 지난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4가 세포배양 백신 ‘스카이셀플루 4가’의 시판을 허가받았다. 세포배양 방식으로 4가 독감 백신을 만든 것은 SK케미칼이 처음이다. 이외에도 SK케미칼은 B형 간염, 수두, DTP(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소아마비 등 다양한 백신을 가지고 있다.
일동제약도 간염, 암, 치매 등 만성·난치성 질환의 신약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만성 B형간염 치료제 ‘베시포비어’의 임상 3상을 진행중이며 표적항암제(IDF-11774, IDX-1197)도 개발중이다.
‘기업활력법’으로 성장 기대하는 제약협회
한편 한국제약협회는 지난달 13일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이 시행되면서 일본의 ‘다케다’ 같은 제약기업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기업활력법은 공급과잉 업종에 속한 기업이 빠르게 사업을 재편할 수 있도록 기업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과 관련된 규제를 없애고 지원하는 법안이다. 제약협회는 이를 업계의 인수합병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이달 19일 제약협회는 관련 내용이 담긴 정책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서 협회는 “일본도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이 1999년 도입되고 기업 간 M&A가 활발해지면서 제약기업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현재 국내 기업들이 R&D에 집중하고 신약을 개발하기 시작하는 등 업계 구조조정 이전의 일본과 비슷하다”며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고 신약이 계속 나오면 10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다케다 같은 업체가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제약업계는 군소업체가 난립해 있다. 우리나라의 의약품 제조업체는 851곳이며 이 중 완제품을 생산하는 제약사는 307곳에 불과하다. 매출 100억 원 미만인 곳이 148곳이나 된다. 이 때문에 상당수 제약사들이 리베이트에 의존하거나 외국계 제약사의 약을 대신 판매하는 상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하지만 이 법이 시행돼도 큰 변화가 없을 거란 의견도 있다. 복제약과 수입약 판매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중소 제약사들이 인수합병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복제약만 만들어도 충분히 사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처럼 적극적으로 M&A에 뛰어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