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희망이다/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 ‘창업프로그램 원조’ 25년 노하우… 구상→개발→창업→확장 4단계 관리 돈 때문에 포기하는 일 없도록 초창기 年 1억1316만원 무상지원
사무실 벽에 “실패를 걱정마라” 선배들의 조언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학생들이 창업의 꿈을 키워 나가는 이노베이션파크 1층 ‘라 포르주’ 사무실. 벽에는 창업에 성공한 선배들의 격문이 붙어 있다. 로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25년 전인 1991년 세워진 창업 지원 기관 ‘이노베이션파크’는 세계 공대 중 창업 프로그램의 원조에 해당한다. 이곳의 산증인인 오렐리 시크 부단장은 “우리의 강점은 화려한 시설과 프로그램보다 축적된 창업 네트워킹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강조했다.
1991년 당시 3개였던 이노베이션파크 건물이 지금은 13개로 늘어났고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일하고 있다. 양적 발전보다 EPFL이 강조하는 것은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업 성공률이다. EPFL 졸업생이 만든 기업의 생존율은 66%에 달한다. ‘아이디어가 사업과 이어지는 곳’이 슬로건인 EPFL의 치밀한 4단계 창업 시스템이 맺은 성과다.
기자가 EPFL을 찾았을 때 이노베이션파크 본관 1층에 있는 ‘라 포르주(대장간)’의 토론 공간에서는 서너 명의 학생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사무실 벽에는 선배들이 남긴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항상 앞을 향해 달려라”라는 격문이 붙어 있다. 현재 이곳엔 학생 30개 팀이 늘 꽉 차 있다. 아이디어가 통과되면 학생들은 최장 1년 동안 갖가지 시설이 갖춰진 이곳에서 일할 수 있다.
라 포르주에서 창업 꿈을 키운 이들은 2단계로 독립된 사무실을 찾아 떠난다. 이노베이션센터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진 창고형 사무실에서 비용 없이 1년 동안 머물 수 있다. 입주 기한이 없는 3단계 ‘꿈의 이노베이션파크’로 들어오면 창업에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현재 이곳에는 140개의 스타트업 기업이 있다.
사업 규모가 커져 이노베이션파크에서 나가더라도 4단계인 치밀한 애프터서비스가 기다린다. 기업들이 독립하더라도 로잔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이달 100명째 종업원을 채용한 소피아 제네틱스의 유르기 캉블롱 대표는 “2011년에 이노베이션파크에서 회사를 세운 후 근로자가 늘어 지난해 초 어쩔 수 없이 EPFL 바로 옆에 큰 사무실을 구해 독립했다”고 말했다.
○ 멘토 5명 상주… 풍부한 경험 전수
멘토 서비스는 모든 단계에서 제공된다. 1단계 라 포르주에 입성한 재학생들은 3개월마다 멘토에게 아이디어를 어떻게 사업화하고 있는지 보고서를 제출해 합격증을 받아야 1년까지 머물 수 있다. 긴장되는 과정이지만 멘토들의 조언을 받는 교육과정이기도 하다.
올해 졸업반인 폴 에드거 씨는 1년 전 라 포르주에 들어와 소셜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외로운 이들의 모임을 주선하면서 만난 장소의 식당 광고를 수주한다. 최고의 멘토인 교수들이 창업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3단계인 이노베이션파크에서 환자의 세포를 추출해 다양한 질병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검사 키트(큐젤)를 개발한 콜린 생크추어리 대표는 EPFL의 마티아스 뤼톨프 교수와 함께 회사를 세웠다. 콜린 대표는 “뤼톨프 교수가 큐젤에 대해 연구한 뒤 논문으로 결과를 발표해 주면 나는 그 신용을 바탕으로 마케팅을 한다”고 설명했다. 학교 역시 교수가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 학교와 정부의 한마음 지원
시크 부단장은 “2005년 EPFL이 만든 ‘이노그랜트’는 초기 투자금을 회수하기 전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이들에게 아무 대가 없이 1년 동안 10만 프랑(약 1억1316만 원)을 급여로 준다”고 말했다. 올해 13명을 포함해 2005년 이후 94명이 혜택을 봤다. 그중 63명이 창업에 성공해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돈 때문에 창업 열정이 식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