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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美親中’ 치닫는 두테르테… 美-필리핀 안보협력 파열음

입력 | 2016-09-21 03:00:00

美 인권문제 거론에 “내정간섭” 반발
“민다나오섬 철도사업 투자 기대” 남중국해 문제, 중국 손 들어줘
군부 “美 도움 필요”… 갈등 조짐




전통적인 친미(親美) 국가 필리핀이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를 펼치고 있다. 오랜 우방인 미국이 인권 문제를 제기하자 “내정에 간섭 말라”며 맞서는 반면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필리핀과 다투는 중국에는 잇달아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이 앞장서 중국을 견제하는 남중국해 문제에 암묵적으로 중국 편을 드는 대가로 민다나오 섬의 열악한 인프라에 중국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두테르테의 반미친중(反美親中) 성향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어 필리핀 군부와 미국의 속을 태우고 있다.

문제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6월 30일 취임 후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국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어 미국도 쉽사리 두테르테 대통령을 압박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는 18일 “범죄 소탕에 6개월이 더 필요하다”며 올해 말 끝날 것으로 예상됐던 범죄와의 전쟁을 연장했다. 20일에는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거세게 비판해 온 레일라 데 리마 법사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상원에서 통과됐다. 이 상원의원 역시 수감 중인 마약상에게서 매달 300만 페소(약 7000만 원)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두테르테를 향한 그의 칼끝이 무뎌질 것으로 전망된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는 이단아 취급을 받고 있다. 민다나오 섬의 다바오 시장 출신인 그는 강대국과 외교를 한 경험이 전무하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껄끄러워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5일에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개××’라고 부르겠다”고 욕설을 퍼부은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대응에 불만을 품은 두테르테 대통령은 12일 “미군 특수부대는 남부 민다나오 지역을 떠나야 한다”고 폭탄 발언을 했고, 하루 뒤에는 남중국해에서 미국을 포함한 외국 군대와 합동 순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과거 앙숙이었던 중국에는 잇달아 유화책을 쓰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관련 판결에서 중국을 상대로 승소했지만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중국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국방부엔 중국과 러시아 무기 구매 검토까지 지시했다.

이런 두테르테 대통령의 튀는 외교에 대해 계산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 자주권 확립’을 강조하는 그가 실리 외교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5일 “중국은 필리핀의 가장 큰 교역국이다. 필리핀은 중국이 철도사업 등에 투자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1951년 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반세기 넘게 굳건하게 유지해 온 필리핀과 미국의 동맹 관계가 금이 가고 있어 필리핀 군부의 우려가 높다. 수도 마닐라에 있는 데 라 살레 대의 리처드 자비드 헤이다리안 교수(정치학)는 “미국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수준의 전략적 방위와 외교적 지원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델핀 로렌자나 국방부 장관조차 14일 의회에 출석해 “필리핀군은 감시 능력이 특출한 미군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밝혀 미군 철수를 주장한 두테르테 대통령과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

 


:: 두테르테 대통령의 반미친중 발언 ::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 없다.”(8월 1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필리핀 인권 문제를 제기한다면 ‘개××’라 부르겠다.”(9월 5일)

“미군 특수부대는 필리핀 남부에서 철수하라.”(9월 12일)

“남중국해에서 미국을 비롯한 외국 군대와 합동순찰하지 않겠다.” “중국과 러시아 무기 구매를 검토하겠다.”(9월 13일)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