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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비키니]한화 김성근 감독 ‘자기 확신의 비극’

입력 | 2016-09-21 03:00:00

툭하면 특타-벌투 ‘더 열심히’ 강조
주축 투수 잇단 부상 이탈에도 ‘지나친 훈련이 독’ 비판 수용 못해
‘져도 괜찮은’ 경기 잡으려 달려들다 꼭 이겨야 할 경기도 못이기는 상황
한화 가을야구 희망 점점 사라져




비극(悲劇)은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同寢)할 것이라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는 이 저주를 피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라이오스 왕이 자기 아버지인 줄 모른 채 죽였고, 홀로 된 어머니 이오카스테 왕비와 결혼하게 됩니다. 자신이 범인인 줄 모르고 라이오스 왕의 살인범을 찾으면 두 눈을 멀게 하겠다고 큰소리친 탓에 나중에는 자기 두 눈을 뽑아야 했습니다. 자기가 맞으면 맞다고 생각할수록 현실은 정반대였지만 오이디푸스는 생각을 고치지 못했고 결국 저주의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프로야구 한화 김성근 감독을 지켜보면서 종종 이런 자기 확신과 비극에 대해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김 감독은 자기 방식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솝우화에서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결국 해님입니다. 그런데 바람은 자기 방식이 틀렸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더욱 거세게 숨결을 내뿜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그네는 옷깃을 더욱 단단하게 여밀 뿐인데도 말입니다.

김 감독도 바람 같습니다. 특타나 벌투가 틀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겁니다. 지나친 훈련이 독(毒)이 될 수 있다는 논리 역시 김 감독에게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는 자의 변명으로만 들릴지 모릅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더 열심히’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한화 간판타자 김태균(34)은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300출루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특타에서 빠져서는 안 됩니다. 주축 투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건 잘못된 폼으로 던졌기 때문이지 혹사 때문이 아닙니다. 투수 어깨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고 믿는 김 감독에게 혹사는 말이 되지 않는 개념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자기가 평생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질까 두려운 걸까요? 실제로는 이렇게 김 감독이 자기 철학을 너무 완고하게 지키려고 하는 바람에 권위가 무너지고 있는데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니 변명에 변명이 꼬리를 문 결과입니다. 이제는 팀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수준이 됐습니다.

김 감독은 19일 “주축 선수 대부분이 30대 중후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3, 4년 뒤에 팀을 끌어갈 선수들을 지금부터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이양기는 잘만 다듬으면 김태균이 하던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재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양기는 1981년생으로 김태균보다 한 살이 많습니다. 김 감독이 말한 30대 중후반에 접어드는 선수죠. 게다가 한화에 30대 중후반 선수가 많아진 것은 김 감독이 베테랑 선수를 중용하느라 젊은 선수를 내보낸 결과물입니다.

프로라면 성공 확률이 0.1%라도 남아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성공 확률이 0.1%밖에 되지 않는다면 재빨리 포기하는 것 역시 프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다음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야구는 1년에 144경기나 열리고 한 경기 승부가 승률에 1%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만큼 ‘져도 괜찮은’ 경기도 많습니다. 그 경기를 모두 이기려고 한 탓에 이제 한화는 꼭 이겨야 하는 경기도 이길 수 없는 팀이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