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세계 1등 제품만 만듭니다’라는 모토를 배경으로 서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대학을 마치고 1984년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파견된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관계자에게서 반도체 제조 공정과 기술을 배웠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태동하는 때여서 선배 기술자의 지식과 실력도 일천했다. 원하는 반도체 엔지니어가 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네덜란드의 세계적 반도체 장비 업체인 ASM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1986년 ASM 한국지사로 옮겼다. 반도체 장비를 공장에 설치하려면 여러 장비를 잘 알아야 한다. 동료들이 장비의 특성을 알려 주지 않아 퇴근시간 뒤 사무실에 남아 모든 장비를 스케치하며 제원과 기능을 익혔다. 스스로 만들거나 수집한 자료가 소형 트럭 한 대분이나 됐다. 출중한 역량을 갖추자 거래처에서 일이 생길 때마다 찾았다.
초창기엔 반도체 장비를 만들 자금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활용해 반도체 장비를 업그레이드해 주는 일을 시작했다. ASM 근무 시절 거래했던 삼성반도체에서 6인치 웨이퍼 제조 장비를 8인치 장비로 개조하는 일을 맡았다. 수많은 반도체 장비를 다루며 익힌 지식을 토대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구조의 8인치 장비를 개발했다. 반도체 장비를 업그레이드하자 생산성이 2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개조 비용은 새 장비 구입비의 절반에 불과했다. 이를 본 현대전자와 LG반도체도 6인치 웨이퍼 장비의 업그레이드를 맡겼다.
2년간 반도체 장비를 개조해 주고 5억 원을 모았다. 오랫동안 생각해 온 반도체 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1995년 웨이퍼에 분자 크기 박막을 입혀 반도체의 저장 용량을 2배 이상으로 늘리는 화학 증착 장비(CVD)를 개발했다. 세상에 없던 획기적인 장비였다. 그러나 국내 기업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반도체 같은 첨단 장비에는 나사 하나라도 국산을 쓰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미국 장비회사 지네스가 기존 제품과 융합시키면 세계 최고 반도체 장비가 되겠다며 3대를 주문했다. 이 장비는 미국 및 일본 기업, 삼성반도체에 팔렸다. 국산 반도체 장비로는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됐다. 외국 기업에서 장비를 샀던 삼성반도체는 국산인 것을 뒤늦게 알고 더 좋은 제품을 요구했다. 생산성과 품질은 높이고 가격은 낮춘 장비를 만들어 삼성반도체에 공급했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에도 들어갔다. 이 장비는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 세계 1위로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1년엔 반도체 미세 공정을 위한 원자층 증착 장비(ALD)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공간 분할 기술을 적용해 화학 증착 장비보다 100배나 얇은 막을 더 빠르고 균질하게 입힐 수 있게 됐다. 생산성은 10배 이상 높아지고 제조비는 70% 이상 줄었다. 대용량 반도체를 양산하는 길을 연 이 장비는 독일 키몬다에 이어 하이닉스에 공급됐다.
위기도 있었다. 2001년 경쟁 업체의 음해로 큰 거래처가 주문을 끊어 시련을 겪었다. 2011년 태양광산업이 꺾이자 태양광 장비를 샀던 중국 기업들이 대금을 안 줘 100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 주문이 늘면서 고비를 넘겼다.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태양광 제조 장비 9개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국내외 특허는 1930여 건에 이른다. 1세대 벤처 기업가인 황 회장은 주성엔지니어링이 국가대표 기업이라는 자부심으로 경기 광주시 본사 건물에 3층 높이 대형 태극기를 내걸고 있다. 그는 세계 최초 기술과 세계에서 하나뿐인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