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도 그와 비슷한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었던 여선생님은 제 성적이 뚝 떨어지자 교무실로 불러 수학 참고서 한 권을 손에 쥐여주셨습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편지에는 수학 점수가 나아지면 성적을 올리는 데 힘이 될 거고, 제가 장녀라고 하니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지금부터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게 좋겠다는 조언이 편지지 몇 장 안에 빼곡히 쓰여 있었어요. 저라는, 눈에 잘 띄지도 않았을 학생을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았다면 쓸 수 없는 그런 편지였지요.
어쩌면 제가 가장 뜨거운 순정을 담아 쓴 편지는 스물네 살 때, 그때껏 연락을 하고 지내던 중학교 국어선생님에게 보낸 것일지 모릅니다. 한밤중에 포마이카 상에 앉아 누런 갱지 여섯 장 가득 편지를 썼습니다. 아무래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너무 비현실적인 꿈같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지만 선생님은 시를 쓰는 분이니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는, 뭐 그런 내용이라고 기억합니다. 보내지 않아도 좋을 그 편지를 한 자 한 자 필압(筆壓)에 담고 느끼며 썼던 이유는 이 세상 누군가 한 사람에게만은 내 고백의 글이 가 닿기를 바랐던 간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여름휴가를 보냈던 도시에서 세트로 된 편지지와 봉투를 사왔습니다. ‘초록’을 뜻하는 ‘미도리’라는 브랜드의, 흰 바탕에 작고 붉은 금붕어가 헤엄치고 있는 편지지.
그 ‘손편지 선생님’이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퇴임하고 나면 문구점에 가서 편지지를 고르는 일이 가장 그리워질 것 같다’고.
오늘의 사물이 ‘편지지’라 편지 형식으로 써보았습니다. 수신하시는 첫 번째 가을편지가 되길 바랍니다.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