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지진 쇼크]‘지진 트라우마’ 경주 가보니
21일 오전 11시 53분쯤 경북 경주 남남서쪽 10km 지점에서 리히터 규모 3.5 지진이 발생하자 지역 주민들은 다시 한 번 공포에 떨었다.
특히 여진이 발생한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주민들은 더 큰 규모의 지진이 올까 봐 두려움에 일손을 놓은 채 하루를 보냈다. 대다수 마을은 본진 및 여진 때문에 부서진 집을 수리하지 못해 무너질 것 같은 데다 마땅한 대피소조차 없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대피 안내 방송도 잘 들리지 않는 실정이다. 일부 노인은 스마트폰은커녕 휴대전화도 없어서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 문자메시지도 받지 못한다. 상당수는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문자를 바로 읽지 못한다.
덕천1리 주민 10여 명은 밤새 마을회관을 떠나지 못했다. 이 회관은 지난해 안전진단에서 위험 판정을 받았고 지진에 내·외부 벽이 이곳저곳 갈라져 주민들이 대피할 곳이 아니었다. 주민 신진국 씨(72)는 “회관이 위험하지만 휴대전화가 없는 상당수 홀몸노인들이 서로 의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모인다”며 “불안을 호소하는 노인이 많아서 꾸준한 심리상담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은 회관이 무섭다며 건물 앞 도로나 비닐하우스로 피했다. 며칠 동안 새벽 추위에 동동 떨었다.
덕천2리 마을은 추수 준비에 나서야 할 시기지만 거의 일손을 놓고 있다. 이상열 씨(59)는 “방이 좌우로 흔들려 한동안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며 “전날 새벽 내내 여진이 계속돼 잠을 한숨도 못 자서 그런지 마음이 더 불안하고 초조했다”고 말했다. 이 마을 60여 가구는 12일 첫 지진 이후 여진이 계속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근의 고속철도(KTX)로 인한 작은 흔들림에도 깜짝 놀라고 가슴 통증도 호소하고 있다. 한 주민은 “새벽에는 조용하니까 여진의 느낌이 더 세다”며 “밤을 지새우고 낮에 겨우 눈을 붙이지만 피곤한 데다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까 온몸이 아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여진은 지난번보다 다소 약했지만 경주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더 크게 만들었다. 한동안 잦았던 여진이 잠잠해졌다가 다시 강해지면서 강한 지진이 엄습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돼서다. 여진이 일어난 곳과 가까운 부지2리에서는 최근 지진 트라우마를 호소해 주민 모두 심리상담 치료를 받았다. 이 마을은 4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 70대 이상 고령이다. 박종헌 부지2리 이장은 “지진 피해로 성한 집이 거의 없다”며 “잇따른 강한 여진에 주민들이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경주시 구정동 불국사초교 교사와 학생 300여 명은 여진이 일어나자 운동장으로 대피했다. 때마침 이날 오전 10시 반부터 50분까지 지진 대피 훈련을 한 상태라 학생들은 배운 대로 빠르게 이동했다. 사이렌이 울리면 처음에는 책상 밑으로 피했다가 교사의 지도에 따라 운동장 가운데로 모였다. 이 학교는 점심을 운동장에서 배식했다. 학교 관계자는 “오후 교육도 계속 운동장에서 진행했다”며 “여진이 이어지면서 아이들이 굉장히 무서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주의 일부 다른 학교도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대피시켰다. 고교 1곳과 중학교 2곳은 단축 수업을, 고교 1곳은 임시 휴교를 했다.
계속된 여진 탓에 부서진 건물 및 주택 복구는 지지부진하다. 특히 한옥마을 기와집 복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지진으로 지붕 기와 등이 파손된 경주지역의 한옥은 3000여 채에 달하며 복구에 드는 기와는 총 15만여 장으로 추산된다. 통상 115m²(약 35평) 규모의 집을 시공하는 데 1만3000장의 기와가 필요하며 8명의 근로자가 투입되더라도 완공까지 1주일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국 기와인연합회 와공 100명이 보수작업에 투입돼 힘을 보태고 있지만 기술자는 물론이고 기와 등 물자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