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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칼럼]대선 주자들을 위한 苦言

입력 | 2016-09-22 03:00:00

권력은 손잡이 없는 양날의 칼, 잘못 휘두르면 부메랑 된다
靑 떠날 때 만신창이 된 전직들 ‘낙하산’ 보낼 ‘작은 힘’ 있으나 나라를 바꿀 ‘큰 힘’ 없기 때문
‘대통령=정치적 죽음의 길’이란 각오 없이는 대권 꿈꾸지 말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왕관은 영광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막상 그 왕관을 쓴 사람의 마음은 그리 즐겁지 않다.” 영국 역사의 황금기를 열었던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여왕의 ‘황금의 연설’ 중 한 부분이다.

헨리 8세와 비운의 왕비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였다. ‘천일의 앤’으로 잘 알려진 어머니는 아버지 헨리 8세에 의해 간통 누명을 쓰고 참수되었다. 이후 엘리자베스는 온갖 박해 속에서 생명을 부지하기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돌연 찾아온 이복언니 메리 여왕의 죽음으로 왕위를 계승한 그녀는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왕이 되었다.

권력을 알아도 오죽 잘 알았을까? 그런 여왕이 말했다. “신이 나를 하늘의 진리와 영광, 그리고 왕국과 백성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삼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이 왕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권력은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오히려 손잡이 없는 양날의 칼이다. 쥐는 순간 손을 베이고, 높이 드는 순간 팔목을 다친다. 잘난 일이든 못난 일이든 이리저리 휘두르다 보면 어느새 그 칼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몸속을 파고든다.

대통령의 권력, 특히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력이 그렇다. 국민적 기대와 헌법적 의무가 큰 반면 그 실질적 힘은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안 하나가 행정부와 국회를 돌아 나오는 데 평균 3년이 걸리는 판에,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큰 문제들이 제대로 된 의제로 떠오르지도 못하는 판에 무슨 일을 얼마나 할 수 있겠나. 이런저런 사람 이런저런 자리에 앉히거나 봐줄 ‘작은 힘’은 있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나라를 바꿀 ‘큰 힘’은 없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들은 만신창이가 돼 청와대를 떠난다. 앞의 대통령들이 그랬고, 지금의 대통령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 들어설 대통령도 마찬가지, 결국은 같은 길을 갈 것이다. 빠른 변화 속에 사회경제적 모순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그런 만큼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실망 또한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러기에는 그 향이 너무 좋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바로잡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큰 힘’이든 ‘작은 힘’이든 그만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뜻을 둔 자가 어찌 그것을 경영할 수단인 권력을 마다하겠는가.

잡은 권력을 뜻대로 행사하지 말라거나 여론이나 따라가라는 뜻은 더욱 아니다. 힘과 권한을 쥐고도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 것은 치사하고 비겁한 일이다. 그러잖아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인기에 영합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 탈이다.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될 사람이 그래서야 쓰겠나.

그러면 어떡하라는 말이냐? 빠르게 일어나는 변화와 우리의 정치경제적 현실, 그리고 권력의 정면과 이면을 먼저 알고 느끼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영광스럽게 청와대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도, 살아서 존경을 받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게 옳다. 차라리 대통령이 되는 것을 정치적 죽음의 길이라 생각하는 편이 옳다.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라. 그런 모든 것을 불사하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절실하고도 분명한 꿈과 비전, 그리고 가치를 가졌는지를. 세월이 흐른 다음, 뒤늦게라도 세상 사람이 여러분의 이름을 다시 부르게 할 그런 정도의 것 말이다.

여러분의 이름이 커질수록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의협심과 정의감에서, 아니면 헛된 공명심에서, 그것도 아니면 ‘권력 쪼가리’라도 주울 욕심으로 여러분 주위를 둘러쌀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하나, 이기는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정치공간에서의 몫을 늘리자는 것이다.

이들이 말할 것이다. 대통령 권력이면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고. ‘국민을 위해’ ‘정의를 위해’ ‘저 무능한 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여러분이 이겨야 할 이유도 백 가지 이상은 이야기할 것이다. 이기는 것을 선이라 할 것이고, 패거리 짓고 선동하는 것을 당연시할 것이다.

이들의 말을 따르지 마라. 홀로 우리 앞에 놓인 무거운 사회경제적 현실과 권력의 정면과 이면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 권력의 칼이 부메랑이 돼 여러분을 향해도 좋다고 생각할 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추구해야 할 꿈과 비전이 있다고 생각할 때, 그때 나서라. 그래야 죽어도 바르게, 또 의미 있게 죽을 수 있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