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에 건립된 전북 익산의 춘포역.
대부분의 간이역이 그렇듯 춘포역은 단출하다. 전문가들이 보면 겹처마나 차양 등 이런저런 세부 요소들이 눈에 들어오겠지만, 보통 사람에겐 육면체 건물에 삼각 모양의 박공지붕을 얹은 형태다. 앞면 뒷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하다. 그러나 1914년 처음 지어졌을 당시엔 평야 한가운데에 제법 우뚝 솟은 모양새였을 것이다.
춘포역은 애초 대장역(大場驛)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이곳은 대장촌(大場村) 마을로 불렸다. 쌀을 모아두는 큰 마당이라는 의미였다. 김제·만경 평야에서 거둔 곡식을 군산항으로 옮겨 수탈하기 위한 일제의 의도가 담겨 있는 지명이었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1996년 대장촌리를 춘포리로 바꾸었고 이에 따라 대장역도 춘포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춘포역은 2007년 역으로서의 기능을 마감했다. 춘포역에 가면 실내에 역의 옛 모습 사진, 주민들의 메모와 그림 등이 걸려 있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 프로그램도 진행하면서 간이역박물관으로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해바라기를 심어 여름철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같은 노력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대목이 있다. 옛 철길이 사라진 점이다. 2011년 전라선 복선 전철화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옛 철길을 철거한 것이다. 새로 난 전철 길은 옆의 고가 위로 지나가고, 춘포역 앞의 옛 철길은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 춘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제강점기 곡물 수탈의 상흔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역사(驛舍) 하나만으론 부족하다. 100m 정도만이라도 철길을 복원해 놓으면 어떨까. 철길이 있어야 춘포역을 좀 더 제대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