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두만강 유역의 한 마을이 홍수로 폐허가 됐다. 사진 출처 북한 내나라 홈페이지
주성하 기자
8월 말까지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2만9350명 중 함북 출신은 62.3%인 1만8284명이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피해 지역 출신으로 파악된다. 홍수 피해가 큰 양강도 출신도 4042명(13.8%)에 이른다. 수많은 탈북자가 가족 걱정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다.
경기 용인의 한 탈북 여성은 침수된 남양의 모습을 TV로 지켜보다 비명을 질렀다. “어쩜 좋아. 우리 집이 물에 잠겼네. 부모님은 어떻게 됐을까.” 그는 지금도 부모님 소식을 알지 못한다. 적잖은 탈북자들이 비슷한 처지다.
연사에서 한 병영이 사라져 군인 40여 명이 몰살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군인 사망자는 유엔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것 같다. 국경경비대 출신 탈북자에 따르면 두만강에만 경비병력 1만 명 이상이 배치돼 있는데, 이들은 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강가를 따라 2∼3km마다 설치된 소대 단위 병영도 홍수로 무너진 곳이 많다. 동시에 북한과 중국 쪽 철조망과 잠복초소들도 피해가 컸다. 북한이 20년 넘게 ‘공들여’ 구축한 북-중 국경 봉쇄망이 한동안 기능 정지 상태에 빠진 셈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이재민이 10만 명 넘게 발생했는데도 아직까진 대량 탈북 사태가 없다는 점이다. 집과 재산을 잃고 살길이 막막하면 한국의 가족을 찾아 탈북할 사람도 많을 법한데도 그렇다. 두만강 인근 주민 중 상당수는 가족 또는 친척 중에 탈북자가 있는 경우가 많다. 회령 유선구의 한 마을 절반가량이 탈북해 남쪽에서 선생들까지 대거 참석하는 동창회가 열릴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설령 집안에 탈북자가 없더라도 국경에서 살다 보면 밀수 루트를 한두 개는 알고 있어 중국 쪽에 연줄을 찾기도 쉽다. 그런데도 없다. 왜일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수해 직후 북한은 군, 보안원, 노동자 규찰대 등을 총동원해 국경에 ‘인해(人海)장벽’을 쌓았다고 한다. 또 외부와의 통화를 막으려고 전파 탐지와 방해전파 송신도 훨씬 강화했다. 중국 쪽 도로도 상당수 유실돼 탈북에 성공해도 당장 국경 지역을 빠르게 벗어나는 데 필요한 차량을 구하기 어렵다.
이것이 다는 아닌 것 같다. 남쪽과 전화가 연결된 한 무산 주민은 “나라에서 우리를 걱정해 엄청나게 관심을 돌려줘서 눈물을 흘린 사람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김정은에게 불만이 가득한 불법 밀수꾼이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게 더 충격적이다. 두만강 사람들은 북한에서 한국과 중국 등 외국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체제에 대한 반감도 제일 높은 편이다. 그런 사람들이 김정은이 여명거리 건설을 중단하고 10만 명의 복구 인력을 보냈다고 감동해 울었다니. 혹시 오랫동안 소외돼 살았던 설움 때문일까. 난 갑자기 충성심이 되살아나 탈북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