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의사
“하늘님, 땅님, 올해 농사도 다 잘되게 해주시오.” 할아버지께는 1년 농사를 시작하며 드리던 당신만의 의식이 있었다. 하늘을 향해 받쳐 올린 두 손에는 그해 파종할 씨앗이 그득 담겨 있었다. 평생을 반복해온 심고 뿌리고, 물 주고 거름 주고, 비료 주고 약 치고, 잡초 뽑고 벌레 잡던 1년 스케줄이었다.
대개의 말기 암 환자들이 그렇듯이 할아버지도 임종을 앞두고는 마약성 진통제 주사가 들어가야 비로소 편안한 표정을 되찾곤 했다. 건강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너무나도 빨리 바꿔 버린 질병이 무섭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극심한 고통에서 일시에 해방시켜 주던 마법 같은 약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사실 바이엘과 몬산토는 그 시작이 모두 화학산업이었고, 2000년을 전후해 생명공학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공통점이 있어 두 회사의 결합이 그리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레드 바이오텍이라고 부르는 제약·헬스케어 분야와 그린 바이오텍이라고 부르는 농화학·종자 분야의 만남이다. 추측건대 이 공룡 기업은 가깝게는 몬산토의 종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약후보물질 발굴에 힘쓸 것이고, 바이엘의 제약기술을 이용해 좀 더 강력한 작물 보존제나 살충제를 개발하거나 유전자 변형, 육종 연구를 식물에서 동물로 확장시키는 등의 노력을 할 것이다.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 보면 알약 하나만으로 한 끼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소형화 캡슐식량이라든지, 식품에 필요한 약효를 입혀 식사로 투약을 대체하는 증강식품, 우주에서도 자랄 수 있는 작물의 파종 연구 등이 가능할 수도 있다. 어쩌면 식품-건강기능식품-약품 간 경계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보통신과 나노기술이 추가돼 씨앗 하나하나가 작은 농장처럼 기능하거나, 미국 항공우주국 또는 스페이스X 같은 기업들과 협력해 자급자족이 가능한 새로운 우주 미생물 식량 연구에도 참여하게 될지 모른다.
기업도 하나의 인격체라면 이 모든 과정이 미래의 우리 후손들과 인류 전체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발걸음이리라. 지구촌 인구 증가 문제와 기정사실화한 고령화, 온난화로 인한 경지면적 감소, 가속화하는 도시화 같은 전 인류의 문제에 대해 과학이 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하지만 혹여 그러한 선의가 유전자 변형을 통해 인류의 미래에 위협이 되거나, 특허에 종속되는 영세농민들의 피해, 식량의 무기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원자재 시장 곡물가격 개입 같은 횡포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란다.
추석 연휴 끝자락의 차창 밖은 온통 황금물결이었다가 어느덧 여수 산업단지의 야경으로 바뀌어 있다. 며칠 새 세상도 변해 버드나무에서 나온 아스피린이 다시 그 씨앗을 품어 버린 시대가 되었다. 두 손 가득 알약을 담아 하늘님, 땅님에게 환자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사의 모습이 떠오르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딘가 어색하지만 꼭 내일의 풍경만도 아닌 것 같다. 누가 알겠는가, 알약을 땅에 심어 경작하는 날이 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