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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문학과 의학

입력 | 2016-09-22 03:00:00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은 실은 정확하지 않다. 히포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남긴 ‘의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이 잘못 전해졌다는 얘기도 있다. ‘기술’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테크네(tekhne)’가 ‘기예(技藝)’를 뜻하는 라틴어 ‘아르스(ars)’로 옮겨지면서 오류가 생겼다는 추정도 있다. 어쨌든 이 대목에서 의술과 예술은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

문학과 의학에 비슷한 점이 있을까. 전공과목으로 선택하기 위한 취향과 직업 현장에서의 활동 등을 떠올리면 공통점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학과의학’ 최근호에 실린 기고 ‘문학과 의학이 만나서 무엇을 할까’에서 이병욱 한빛마음연구소장은 문학과 의학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학은 삶의 고통을 다루고 의학 역시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갈등을 다룬다”는 것이다. 물론 문학이 예술이기 때문에 어떤 정해진 법칙에도 구애받지 않는 데 비해, 의학은 사람의 생명이 오고 갈 수 있기에 엄밀한 법칙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소장에 따르면 “문학과 의학은 생명의 가치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배를 탄 동지인 셈”이다.

그 자신 의사이자 시인인 마종기 씨는 행복한 의사가 되기 위해선 문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40년 가까이 의사로 일한 그는 은퇴한 뒤 연세대 의대에 ‘문학과 의학’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일에 나섰다. 해외 의대에선 1970년대 후반부터 의대에 문학 강의가 생겨났고 이제는 대부분 미국 의대에서 실시하고 있단다. 더욱이 미국의 의대 입학전형 시험에선 문학과 인문학 분야 독서에 대한 질문이 늘어나고, 시험 점수가 비슷하면 의예과 출신이나 과학 전공자보다 문과대 졸업생을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시키려는 추세다.

학문적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문학과 의학을 이으려는 이런 노력에 대해 마종기 씨는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압박감을 든다. 어느 직업이나 압박감이 있겠지만, 의사는 자신의 작은 실수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장애를 만들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긴장감, 고통으로 신음하는 환자와 평생을 같이해야 하는 상황 등으로 인해 우울증까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살을 감행하거나 술과 여자, 마약과 도박에 빠지는 의사가 종종 나오는 이유다. “의학은 확실히 과학만이 아니고, 기계의 수치를 분석하기 전에 환자를 인간으로 보고 인간의 감성과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대산문화 가을호)이라고 마종기 씨는 설명한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데다, 속되지만 경제적 여유라는 측면에서 의학은 ‘쓸모 있는’ 직업으로 여겨진다. 시와 소설이 없어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어 보이는 탓에 문학은 어쩌면 ‘쓸모없는’ 분야 같다. 그런데 그 문학이, 환자의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 의사의 불안과 정신적 고통을 위무한다고 하니 그 용도가 결코 적지 않은 것 같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