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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죽어가던 수공업 지역 ‘일본판 에어비앤비’로 되살아나

입력 | 2016-09-22 03:00:00

[규제 희비 쌍곡선 한일 현장 르포]<上>관광규제 풀어… 뛰는 일본




정부가 나서자 민간이 호응했고 지방자치단체가 뛰기 시작했다. ‘국가전략특구’로 대표되는 일본의 규제개혁이 시행된 과정이다. 2013년 4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잃어버린 2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30년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 전국 단위 규제개혁을 총괄하는 총리 자문기관인 ‘규제개혁회의’를 통해 ‘아베노믹스 전략특구’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해 9월 민간과 지자체의 제안을 받아 15개의 특구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기존의 특구정책이 여러 지역을 분산 지원했다면 아베의 전략특구는 소규모 지역을 선정해 우선 지원하고 성과가 나면 이를 확대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 民官이 머리 맞대고 스마트하게 규제 풀어

중앙정부가 반발하는 기존 숙박업자와 협회를 설득하면서 ‘최소 6박’이라는 조건을 달아 만든 가정식 민박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림픽을 앞두고 숙박시설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도쿄 하네다공항 인근 오타 구를 ‘민박 특구’로 지정한 것이다. 이 정책은 스테이 저팬이라는 민간 숙박·주택 중개기업의 제안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스테이 저팬의 미쿠치 소노스케 대표는 “비어 있는 원룸이나 가옥이 많은 일본에서 이를 활용하는 비즈니스가 유망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법률적 제약에 막혀 있었다”며 “정부가 우리 회사의 아이디어를 수용해 지금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박특구는 10월부터 오사카에서도 시행될 예정이며 지바와 기타큐슈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정책 도입이 논의됐던 초기부터 순항한 것은 아니다. 주변 일대 기존 숙박업자들이 “관광객을 다 뺏길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일본 전국여관업조합도 반대 의견을 내며 정부를 압박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가정식 민박에는 장기 투숙객만 머물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움으로써 기존 숙박업자들의 불만을 해소시켰다. 또 ‘호텔업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제시하며 여론을 설득해 나갔다. 특히 기존 관광객이 아닌 새로운 유형의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기존 사업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민간 사업자나 지자체의 아이디어를 정부가 수용해 규제를 풀어간 사례는 더 있다. 늘어나는 관광객, 사업차 장기 체류 중인 외국인 등의 불편 해소를 목적으로 추진된 의료 관련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이전까지 외국인 의사가 일본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행위는 불법이었다. 일본 내 외국인 환자가 급증하자 일본 정부는 영국, 미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4개국과 협정을 맺었다. 해당국의 의사가 각 나라에서 치르는 영어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하면 일본 내 의료특구에서 자유롭게 진료할 수 있게 했다. 의료 분야의 활성화에 그치지 않고 외국인 친화적인 국가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관광객과 투자자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내려진 조치였다.

이 같은 규제 완화로 현재 도쿄에 있는 준텐도 대학병원, 게이오기주쿠 대학병원, 세이루카 국제병원에서 5명의 외국인 의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특히 세이루카 국제병원은 외국인 의사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연간 8600명가량의 환자를 맡기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 규제 개혁에 ‘사소한 것’은 없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규제 개혁도 있었다. 지난해 도쿄 신주쿠거리 일부 구역에 한국의 ‘푸드트럭’과 유사한 ‘키친카’가 선을 보였다. 오사카에서는 길거리에서 바자회와 수공품 축제를 열 수 있게 됐다. 먹고, 놀고, 즐기는 것과 관련된 규제를 풀어 관광객을 끌어들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조치들이다.

이런 일들이 가능해진 건 ‘도로법 특례’ 덕분이었다. 일본의 도로법은 종류가 많고 규제가 까다롭다. 이에 일본 정부는 규제를 풀기 위한 법을 새로 만들기보다 기존의 법률은 유지하면서 필요한 부분은 ‘특례법’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풀어 나갔다.

일본의 국가전략특구 규제특례조치는 여관업법, 의료법, 건축기준법, 도로법, 농지법 등 무려 10건이 넘는다. 규제개혁이 다양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자 장기 불황에 신음하던 많은 민간 기업들과 국민들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규제는 빠르게 풀되 이해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는 방식에 대한 지지다.

도쿄도 정책기획국 나카가와 요시오 과장대리는 “키친카를 허용하거나 수공품 축제가 가능해지는 등 사소해 보이는 규제개혁 조치도 사실은 경찰, 주변 상인 등과의 긴밀한 협조와 원활한 소통이 필요한 것”이라며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정부 등이 이해관계 당사자들을 만나서 설득하려고 노력한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설득이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사람들과 만나고 직접 뛰는 것이 중요하다”며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는 진심은 결국 통한다”고 덧붙였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연구원은 “일본은 엄청난 위기의식을 가지고 여러 규제개혁을 이뤄냈다”며 “민간과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정부가 적극 돕는 ‘빠른 규제개혁’으로 우리나라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고승연 seanko@donga.com / 장재웅 기자
한정우 인턴기자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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