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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숙박 NO, 음식 NO… 대관령목장서 팔 수 있는건 컵라면뿐

입력 | 2016-09-22 03:00:00

[규제 희비 쌍곡선 한일 현장 르포]관광규제 묶여… 기는 한국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이 개최되는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불과 7.5km 남짓 떨어진 대관령 일대의 삼양목장과 하늘목장.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연간 68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평창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하지만 ‘올림픽 특수’를 앞두고도 두 목장의 표정은 밝지 않다. 대관령 일대가 촘촘한 규제로 묶여 있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문객들에게 컵라면만 제공할 뿐 음식을 조리해 판매할 수 없다는 게 대표적이다. 또 전망대와 트레킹코스 등은 운영할 수 있지만 캠핑 등 숙박과 연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스위스가 알프스 융프라우에 산악열차를 건설해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일본이 고야(高野) 산에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하늘목장 최재돈 목장장은 “산악열차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개발할 수 있는데도 규제에 묶여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대관령을 ‘아시아의 융프라우’로”

강원도 대관령 지역은 백두대간보호법, 산지관리법, 산림휴양법, 국유림법, 초지법, 산림보호법, 환경영향평가법 등 무려 7개 법령에 의해 전체 산지(1만3786km²)의 86%가 규제에 묶여 있다. 예를 들어 ‘상수원 보호구역 내 음식조리 및 판매 불가’ 조항에 따라 음식을 조리해 판매할 수 없다. ‘백두대간 보호지역 내 민간궤도시설 설치 불가’ 조항에 따라 산악열차도 운영할 수 없다. 산장은 물론이고 화장실, 비 가림 시설도 짓기가 쉽지 않다.

규제를 풀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규제프리존 법안)에는 완충구역 내 산악열차, 숙박시설, 전망대, 휴게음식점, 클럽하우스 설치 등을 허가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관령 일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되 일부 지역만 규제를 풀어 관광객을 유인할 시설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박용식 강원도청 균형발전과장은 “규제프리존 대상 면적은 30km²로 전체 산지면적의 0.2%에 불과하고, 자연 훼손의 우려도 크지 않다”며 “규제프리존 법안이 통과된다면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산악관광을 키워나가 대관령을 ‘아시아의 융프라우’로 충분히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대관령 일대를 눈여겨본 민간 업체들은 일찌감치 강원도와 협의해 대규모 투자계획을 세웠다. 삼양목장은 곤돌라 글램핑 등에 296억 원을, 하늘목장은 산악열차 등에 755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대명비발디파크도 1000억 원대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 먼지만 쌓이는 ‘규제프리존 특별법’

문제는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법안이 통과될 기미가 없어 이 같은 투자계획들이 무용지물로 남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난해 말 ‘2016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규제프리존 계획을 공개했을 때만 해도 지방자치단체들과 기업들은 기대가 컸다.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려는 강원도만 아니라 해양관광을 앞세운 부산, 친환경자동차를 강조한 울산 등 전국 14개 시도는 특화된 미래 첨단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획기적인 규제 완화 정책에 지자체들은 반색했고, 야당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19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했고, 20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와 사드 특별위원회 설치 등을 놓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면서 정치권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여야 간 이견이 없고, 정치적인 쟁점도 없는 법안마저 표류를 거듭하면서 한국 경제가 신성장동력을 찾을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산악열차 등 관광시설을 완공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규제프리존을 토대로 농생명 산업 등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4차 산업혁명 생태계를 육성하려던 정부 및 지자체의 계획도 타격을 입게 됐다.

조선업 등 한국의 전통 주력산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는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8월 울산(4.0%), 경남(3.7%)의 실업률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각각 1.2%포인트, 1.6%포인트씩 높아지는 등 제조업 불황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민규 일본 돗쿄(獨協)대 교수는 “일본이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 위기감 속에 지자체, 민간기업, 중앙정부가 함께 뛰고 있는 반면 한국은 한쪽이 뛰려고 하면 다른 쪽이 발목을 잡고 있다”며 “관광, 의료, 농업과 농생명 과학 등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장재웅 기자·박민혁 인턴기자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우종현 인턴기자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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