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 기자의 아, 저 차 영화에서 봤어!
영화 ‘서울역’의 한 장면
자동차는 움직이는 집이다. 천둥이 치고 맹수가 어슬렁거려도 일단 차 안에만 있으면 안도감이 느껴진다. 재난 상황에서 자동차는 탑승자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최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자동차는 재난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나 소품이다. 그런데 최근 인기를 끈 국내 재난영화 2편에 같은 차종이 비중 있게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영화 ‘터널’과 애니메이션 ‘서울역’에 등장한 기아자동차 ‘K5’다.
두 영화에서 K5는 주인공들의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터널’은 아예 주인공부터 ‘기아차 하도대리점 과장’으로 설정돼 있다. 주인공 이정수(하정우)는 자신의 K5에 의지하며 절망적인 상황을 견뎌나간다. 자동차 라디오에 잡히는 유일한 방송인 클래식 채널은 세상의 소식을 듣는 유일한 통로이고 헤드라이트는 불빛, 경적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확성기의 역할을 한다.
‘서울역’은 올해 첫 1000만 관객 영화가 된 ‘부산행’의 프리퀄이다. 위기에 처한 ‘혜선’을 구하러 다니는 아버지 ‘석규’와 남자친구 ‘기웅’이 좀비로 덮여 가는 서울역 일대를 ‘그나마’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것은 석규의 K5 덕분.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어떤 차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특징적인 ‘호랑이코 그릴’과 헤드라이트의 모양 등 각종 디자인 요소들을 보면 2015년형 ‘K5’임을 알 수 있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 등 연상호 감독의 전작을 본 사람들이라면 연 감독의 메시지를 ‘부산행’보다는 ‘서울역’에서 더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차라리 좀비가 되는 것이 더 나은 현실’에 관한 것. 마치 혜선처럼 좀비들과 뒤엉키면서도 가까스로 서울 시내를 달리던 K5는 좀비보다 더 끔찍한 현실로 석규와 기웅을 안내한다. 이제 주변에서 흔하게 보이는 차 중 하나가 된 K5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을 대신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끝으로 ‘서울역’을 본 사람이라면 이 글의 내용 중 하나가 잘못됐다는 점을 알 것이다. 무엇인지는 직접 영화를 보고 알아내시길! 물론 15세 이상만.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