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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일상 됐는데… 지진 전문가는 11명뿐

입력 | 2016-09-23 03:00:00

경주 400여차례 여진… “몇달 지속” 지자체엔 지진 전문인력 아예 없어
정부, 경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



유리외벽-철탑-간판도 지진땐 ‘흉기’로 깨지기 쉬운 유리 외벽, 단단히 고정되지 않은 철탑, 떨어지기 쉬운 건물 외부 간판(왼쪽부터)…. 이와 같이 도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비구조물’ 대부분이 내진 기준을 지키고 있지 않아 파손될 경우 수많은 인명 피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2일 오후 경북 경주시 내남면 덕천1리 마을회관 옆 비닐하우스. 널려 있는 빨간 고추 옆으로 두툼한 이불과 말린 약초, 김치통 등이 가득했다. 혹시 대형 지진이 나면 대피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미리 가져다 놓은 것이다. 이모 씨(74·여)는 “여진(餘震)이 일어날 때마다 이웃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며 “큰 지진이 날까 봐 잠자리까지 준비해 뒀다”고 말했다.

 관측 이래 최대(리히터 규모 5.8)의 지진이 닥친 12일 이후 열흘이 지나면서 경주 시민들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400여 차례의 여진을 겪으면서 이곳 주민들에게 지진은 뉴스 속 일이 아니라 현실, 그것도 일상이 됐다. 시민들은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문 앞에 짐을 싸놓고, 비상식량도 마련해 뒀다. 평소에 관심 밖이었던 심폐소생술이나 간단한 응급처치 매뉴얼을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에게 지진 대피 요령을 꼼꼼하게 가르친다. 출근길과 등굣길에 “조심하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다.

 기상청은 12일 발생한 본진보다 더 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규모 3.0∼4.0의 여진은 앞으로 적어도 몇 주, 길게는 몇 개월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경주 시민들은 수개월간 이런 생활을 반복해야 한다. “경주뿐 아니라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불안감도 커졌다. 한국 사회가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재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제대로 알려주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믿을 만한 지진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난 관리를 총괄하는 국민안전처에 지진 전문가는 내진설계를 담당하는 토목·기계공학 전공자 2명뿐이다. 지진 관측을 맡는 기상청에도 지진을 전공한 박사학위 소지자는 9명에 불과하다. 지진 관측과 대응 분야에서 박사급 이상 정부 인력이 11명밖에 없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방재 공무원 중 지진 전문 인력은 아예 없다.

 한편 정부는 22일 경주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지진으로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주=정지영 jjy2011@donga.com / 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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