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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국가위기 강조한 대통령 ‘등잔 밑 지진’이 걱정이다

입력 | 2016-09-23 00:00:00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지키는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강조해 왔다”며 ‘국민적 단합’을 강조했다. 또 “이런 비상 시기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의혹에 대한 야권의 공세를 문제 삼은 것이다.

 나라가 김정은 정권의 ‘핵 인질’로 잡힌 안보 위기 상황에 대통령이 국민의 단호한 자세를 촉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같은 자위적 조치가 북한의 5차 핵실험을 불렀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방서가 있어서 불이 났다고 하는 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논리”라는 대통령의 야권 비판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대화를 위해 주었던 돈이 북한의 핵개발 자금이 됐고, 협상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북한은 핵 능력을 고도화했다”며 작금의 북핵 문제를 김대중·노무현 정권 탓으로만 돌린 것은 온당치 못하다. 진보정권의 ‘대북 퍼주기’가 문제가 있지만 북이 2∼5차 핵실험을 감행하며 핵 능력을 고도화한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라는 점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한 문제 제기마저 ‘난무하는 비방’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으로 치부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기업들이 800억 원이나 되는 거액을 뚝딱 출연해 단시일에 두 재단이 만들어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권력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의원들이 두 재단의 설립과 기부금 모금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을 묻기 위해 최순실 씨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다. 이를 거부해 파행을 불러온 새누리당 책임이 무겁다.

 대통령은 “정치권과 국민이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긴급재난문자 등 재난정보 전파 체계가 빠르고 실제 도움이 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기상청의 지진 대응 매뉴얼은 ‘심야시간에는 가능한 익일 또는 당일 아침’ 기상청장과 차장(지진 탐지 15분 이내), 장차관(15분 이후)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는 것이 이 정부의 수준이다.

 친박(친박근혜) 좌장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사무실의 인턴 출신이 최 의원의 압력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에 특혜 채용됐다는 중진공 이사장의 증언도 새롭게 나왔다. 법정 증언은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님에도 이정현 대표는 당무 감사 여부를 묻는 질문에 “내가 최 의원 대변인이냐”고 쏘아붙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측근과 실세가 물의를 일으키는데 ‘위기이니 단합하라’고 몰아붙이기만 해선 승복할 국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