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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때 非구조물이 더 위험… 내진기준 엄격히 적용해야”

입력 | 2016-09-23 03:00:00

[지진 대비 제대로 하자]국내 건물 비구조물 ‘지진 무방비’
경주 5명 떨어진 물건에 맞아 부상… 학교 218곳 중 102곳 파손 등 피해
병원-소방시설 기능 마비될 수도
칠레 지진때 병원 62% 제기능 못해… 국내 비구조물 내진기준 유명무실




파손된 소방 배관 12일 강진이 일어난 경북 경주와 다소 거리가 있는 경남 양산의 공장 건물에서도 지진 여파로 소방 배관이 터져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제공

 “이것 보세요. 건물 외벽 마감재를 손으로도 뗄 수 있을 정도네요.”

 22일 서울 강남구의 한 5층 건물을 둘러보던 김영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정책기획위원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뜯겨진 1층 외벽 마감재 안으로 콘크리트 골조가 그대로 드러났다. 철물로 견고하게 고정돼 있어야 할 석재 마감재 일부는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이날 전문가와 함께 둘러본 서울 강남대로 주변의 건물 20곳은 대부분 석재나 유리로 외벽을 마감했다. 김 위원장은 “지진이 발생하면 콘크리트나 철근으로 된 건물 뼈대는 무너지지 않아도 이런 외벽 마감재는 충격을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 지진 인명피해 주원인은 ‘비(非)구조물’

 

“이런 곳 위험해요” 김영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정책기획위원장이 22일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 주차장에서 소방용수 배관을 가리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진 때 낙하물 사고가 우려되는 건 외벽 마감재뿐이 아니다. 근처 식당 옥상에는 약 15m 높이의 철탑이 설치돼 있었다. 태풍 등 거센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강남대로 일대는 상가건물의 벽면마다 간판 수십 개가 뒤덮고 있었다. 또 대형 수입차량 전시장은 도로 쪽 벽면의 70%가 유리였다. 지진이 났을 때 언제라도 보행자를 덮칠 수 있는 비구조물이다.

 

비구조물은 건물 골격을 제외한 외벽과 유리, 승강기, 전기·소방시설, 광고판 등을 말한다. 사무실이나 가정의 조명, 가전, 가구도 포함된다.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이나 교량이 무너지는 걸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인명 피해는 이런 비구조물 탓이 크다. 특히 도심에서 지진이 날 때는 비구조물 낙하에 따른 피해가 막대하다. 김 위원장은 “지진으로 인한 사상자의 70∼80%는 비구조물이 떨어지거나 파손되면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12일 발생한 경주 지진으로 입원한 환자 23명 중 5명은 텔레비전, 가구 등 낙하물을 피하지 못해 다친 경우였다.

 학교시설 피해는 더 심각했다. 교육부가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진 피해를 입은 경주지역 218개 초중고교 가운데 102개교에서 비구조물이 떨어지거나 파손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대다수는 천장과 벽의 타일과 조명이 떨어지는 등 낙하물 사고였다. 승강기와 배관시설이 파손된 학교도 있었다. 이 의원은 “학교 내진 설계가 구조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비구조물 안전은 간과하고 있다”며 “내진 보강이 끝난 학교도 아이들의 안전을 안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병원·소방시설 비구조물 피해는 치명적

 비구조물로 인한 지진 피해는 낙하물 사고뿐이 아니다. 소방이나 전기, 통신시설이 파손되면 대형 화재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곳은 병원이다. 구조물진단학회에 따르면 2010년 칠레 지진 당시 공공병원 130곳의 62%가 전기, 조명시설 등 비구조물이 파손돼 제 기능을 못 했다. 4곳은 아예 운영이 중단됐다.

 박홍근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진으로 병원이 무너지지 않을 수는 있어도 수술 등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건축물 중요도 기준에서 대형 병원은 특수시설로 분류돼 일반 건물의 1.5배 내진 기준을 갖춰야 하지만 과연 그 기준에 맞게 설계됐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발표한 ‘내진율 42%’(내진 설계 대상 건축물 기준)가 실제 내진 성능과 동떨어진 통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건물 붕괴나 매몰 사고는 피할 수 있어도 비구조물 파손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뒤늦게 비구조물 피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앞서 국민안전처는 5월 지진방재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유리와 승강기, 조명 등 비구조물의 내진 설계 기준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존의 ‘건축구조기준’과 비교하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유리와 벽의 틈새 기준 등 일부 규정이 신설됐을 뿐 대부분 기존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박 교수는 “비구조물 내진 기준은 이미 마련돼 있다. 설계나 시공 과정에서 이를 따르지 않고 점검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진을 자주 겪은 일본, 미국 등 방재 선진국들은 비구조물 내진 기준을 엄격하게 따른다. 미국의 건축물 안전기준에는 ‘영구적으로 설치하는 비구조물은 지진 진동에 견딜 수 있게 설계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일본은 조명기구 등에 이중 고정장치를 설치하도록 해 낙하물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정광량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은 “미국 등 건축 안전기준이 까다로운 나라에서는 비구조물 하나를 추가로 설치할 때마다 안전에 영향이 없는지 검사를 받아야 한다. 비구조물 내진 설계를 감독할 수 있도록 건축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비(非)구조물 ::


건축물의 기둥과 기초 벽체 등 구조물을 제외하고 여기에 설치되는 부착물을 말한다. 외벽 칸막이벽 천장 조명 물탱크 전기통신장비 승강기 등이 해당된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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