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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의 독서일기]사물과 우연이라는 틈새의 역사가 주는 교훈

입력 | 2016-09-23 03:00:00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KBS1 ‘역사저널 그날’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역사에는 생각보다 빈틈과 우연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과학 저술가가 쓴 이 책을 통해서는 역사를 인간이 아닌 사물을 중심으로 서술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역사를 인간의 의도적 행위에 의한 인과적 필연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야기를 선호하는 인간 본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일 뿐, 우리는 다른 시선을 취할 수도 있다. 사물과 우연이라는 틈새의 역사 말이다.

 가령 유리를 보자. 13세기 초 십자군이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자 그곳의 유리 장인들이 베네치아로 넘어왔고 곧 맑은 유리가 탄생했다. 인쇄기가 발명돼 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자신의 시력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대중들은 안경을 쓰게 된다. 그리고 안경은 다시 책의 대중화를 불러왔다.

 유리의 뒷면을 불투명하게 칠한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게 했고, 이는 개인과 내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어 르네상스가 꽃피는 데 영향을 미쳤다. 유리를 이어 만든 현미경은 인류에게 세포와 박테리아를 볼 수 있게 해주었고 병의 원인을 파악한 인류는 항생제를 만들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 망원경은 갈릴레이가 목성의 위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자각하게 해 주었다. 천문대의 망원경은 거대한 우주의 과거를 보여주는 타임머신이 됐다. 결국 안경과 망원경은 종교개혁에 영향을 미치게 돼 십자군 원정이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어린 시절 디즈니 만화를 보면 ‘루브 골드버그 장치’가 자주 등장했다. 모닝콜을 울리기 위해 번잡하고 기나긴, 낭비에 가까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코믹한 장치 말이다. 과거에는 난센스라며 웃어넘겼지만 요즘은 인류의 역사도, 개인의 인생도 어쩌면 ‘루브 골드버그’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쉽고 빠른 방법이 있지만 실제로는 멀리 돌고 돌아서 가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편한 길을 찾기 위한 얄팍한 꾀보다는 손해 보는 듯하지만 우직하게 해온 행동 하나하나가 루브 골드버그 장치를 거쳐 우리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P.S.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주도 루브 골드버그 장치처럼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윤석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