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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감독 김정승씨 “한식 즐기며 민속악 공연까지… 눈-귀-입이 즐거운 국악 어때요”

입력 | 2016-09-23 03:00:00

돈화문국악당 초대 예술감독 김정승씨




서울돈화문국악당 초대 예술감독인 김정승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국악당 정문에 섰다. 그는 돈화문국악당을 “다양한 장르의 국악을 원음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전남 구례군의 고택에서 단소와 거문고를 즐기던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말했다. “음악을 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 음악은 풍류(風流)로 즐겨야지 돈을 버는 수단이어선 안 된다는 당부였다. 하지만 지리산 자락에 울려 퍼지던 할아버지의 단소는 손자의 가슴에 내려앉아 국악인의 꿈을 품게 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초대 예술감독인 김정승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43). 그의 할아버지는 백경 김무규 선생(1908∼1994)이다. 김 선생은 전통음악의 대가인 추산 전용선으로부터 거문고와 단소를 전수받은 단소 명인이다. 인간문화재였던 그의 구례 고택은 당시 국악과 풍류를 즐기던 이들의 사랑방이었다.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이 약을 먹고 눈이 멀어 가던 장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은 국립국악고와 서울대 국악과에 들어가 국악인의 길을 걸었다. 1997년부터 국립국악원 정악당에서 대금을 불었고 2013년부터 한예종에서 후학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는 올 1월 새로 문을 연 돈화문국악당의 예술감독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악에 빠져들었어요. 풍류를 돈으로 바꾸는 건 안 된다고 할아버지가 말렸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다행히 아버지가 적극 지원해 주셔서 국악인의 길을 걷다가 국악당 예술감독까지 하게 됐습니다.”

 김 감독에게 돈화문국악당 예술감독은 특별한 자리다. 돈화문국악당 설립은 국악의 메카였던 창덕궁 인근을 되살리려는 서울시의 첫 프로젝트였다. 창덕궁에서 종로3가까지 이어지는 ‘국악로’는 국립국악원의 전신이자 일제강점기 왕립음악기관이었던 이왕직아악부와 국악사양성소(현 국립국악고) 등이 몰려 있던 곳이다. 박귀희 김소희 김성진 등 국악 명인들의 사저와 한복집, 악기사도 밀집해 있었다.

 하지만 1991년 국악원과 국악고가 각각 서초구와 강남구로 이전하며 국악로는 이름만 남게 될 처지가 됐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앞에는 거리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주유소가 자리 잡았다. 서울시는 국악로를 되살리기 위해 2009년 주유소 용지를 사들여 국악당을 짓기로 했고 이달 1일 문을 열었다.

 김 감독은 돈화문국악당을 일반 시민들이 친숙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로 꾸밀 계획이다. 당초 돈화문국악당은 정악(궁중음악) 전용극장으로 조성될 계획이었다. 김 감독은 서울시와 협의해 판소리, 민요, 사물놀이 등 민속악도 함께 선보이는 장소로 꾸미기로 했다. 다음 달 7일에는 한식을 먹으며 정악과 민속악을 즐기는 공연 ‘국악의 맛’을 준비 중이다. 

 “많은 사람이 감동과 재미를 느끼기 위해선 한 콘텐츠에만 매달리면 안 됩니다. 정악을 바탕으로 하되 ‘고루하고 졸리다’는 국악의 편견을 깰 수 있는 다양한 공연을 보여드릴 계획입니다. 국악의 맛은 그 첫 시도가 될 거예요.”

 김 감독은 돈화문국악당의 가장 큰 매력으로 ‘소리’를 꼽았다. 한옥으로 지어진 돈화문국악당은 자연 음향을 추구한다. 앰프로 기계적인 확성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140석 규모의 좌석은 연주자들의 손 떨림, 눈 깜빡임까지 볼 수 있을 만큼 무대와 가깝다.

 “소리가 가지고 있는 질감은 마이크를 통하면 본모습이 사라집니다. 돈화문국악당에선 앰프를 거친 압도적이고 풍성한 소리는 아니지만 사람의 목소리와 악기가 가진 특별한 질감을 코앞에서 즐길 수 있죠. 국악을 ‘원음’으로 한 번도 못 들어본 관객에겐 굉장히 담백하고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