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3D업종서 뛰는 청년들]
최준용 에피세리 대표가 배달 자전거를 타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어른들이 청년들을 바라보며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전쟁의 아픔도, 배고픈 설움도 느낀 적이 없기에 편한 것만 찾고 독한 구석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고 번듯한 직장까지 버리면서 스스로 험한 미래에 몸을 던진 청춘도 있다. 청소와 세탁 등 이른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Dirty, Difficult, Dangerous) 분야에 창업이라는 도전장을 낸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또래가 선망하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산업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길을 기꺼이 선택했다.
청춘 벤처의 출현으로 침체기를 걷던 관련 업계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근로자와 소비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윈윈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 손걸레질하고 세탁물 배달하는 CEO “우린 전문가”
#1. 출근 전 고요한 오전 7시의 한 사무실. 회사 직원도 아닌데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사무실을 청소한다.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출근하기 전에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사무실 입구 바닥에 깔린 매트부터 의자 바닥에 놓인 작은 때까지 꼼꼼히 청소한다. 사무실이 깨끗해질수록 청소장갑은 더욱 까매진다. 얼핏 깨끗해 보이는 곳까지 손이 안 가는 데가 없다. 남들은 출근하는 이른 아침이지만 이들은 벌써 일감을 마무리하고 다른 일터로 향한다.
#2. 8월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역대 최악의 폭염 속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릴 정도다. 사람들이 연신 부채질을 하며 그늘 아래로 숨지만 어깨에 세탁물을 잔뜩 두르고 6층 빌라를 오르내리는 이들이 있다. 티셔츠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지 오래다. 지친 날씨에 시원한 아메리카노 커피라도 마시며 쉬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오늘까지 배달해야 할 물건이 많기 때문이다. 고객이 연락을 받지 않으면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응대한다. 고객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시간대에 다시 배달을 오기로 약속한다.
벤처기업 홈마스터와 세탁특공대 직원들의 일상이다. 과거 이런 업종의 사람들을 ‘3D 근로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세탁물 배달과 청소를 전문가의 영역으로 변화시킨 ‘작은 혁명가’들이다. 10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해도 연봉은 그대로이고, 전문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고용은 불안정한 3D 산업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는 3D 전문가
천영진 다섯시삼십분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와 정상화 공동대표(왼쪽).
이삿짐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섯시삼십분’도 단순 3D 업종이던 것을 새로운 전문 분야로 브랜딩하고 있다. 천영진 대표(33)에 따르면 오랫동안 이삿짐 서비스 업계에서 일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가장 힘든 점은 체력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다. 그래서 다섯시삼십분은 ‘짐맨’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직원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변영표 홈마스터 대표는 “청소 도우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시키고 싶다”라며 웃어 보였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변 대표가 어릴 때 그의 부모도 청소 용역업을 했다. 가끔은 부모를 따라 청소를 도우러 나가기도 했다. 가끔 무시하는 듯 쳐다보거나 홀대하는 경비 아저씨들이 기분 나빴다. 그는 청소 도우미에 대한 이런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청소 도우미인 홈마스터의 시급은 1만2000원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시간당 7000원도 못 받는 업체가 허다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다. 최대 월 250만 원을 버는 홈마스터도 생겼다. 시급뿐만 아니라 업무 여건도 개선했다. 기존에는 청소 도우미가 물건을 파손했을 경우 당사자가 배상해야 했다. 하지만 홈마스터는 손해보험회사와 보험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청소하다 물건이 파손돼도 홈마스터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 직원은 “예전 같으면 얼굴을 붉히며 손님과 누구 잘못인지 따져야 했는데 그런 걱정이 없어져서 일하는 데 마음이 너무 편하다”면서 “여러 가지가 좋아지니까 자존감을 갖고 일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이런 소문이 나면서 홈마스터 지원자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50대 이상이던 연령대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혁명
예상욱 세탁특공대 대표(가운데)와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유니폼과 세탁커버를 들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표준 가격을 정하는 것이었다. 기본 흰 셔츠 3000원, 반코트 8000원, 트렌치코트 1만 원, 겨울코트 1만2000원 등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지역마다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권장표준가격이 있지만 대부분의 세탁소에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에 대한 고객의 불만이 상당하다는 것을 파악한 데서 시도한 일이다. 가격 표준화에 익일 배송, 꼼꼼한 서비스까지 입소문이 나면서 창업 1년 만에 세탁특공대의 월 매출은 1억 원 정도 규모로 성장했다.
기자가 서울 강남구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평일이지만 고객이 맡긴 옷과 이불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요원’으로 불리는 직원들이 계속해 사무실로 세탁물을 받아 왔다. 세탁물을 분류해 사진을 찍어 옷 상태를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이 작업이 끝나면 세탁소로 보내진다. 미리 사진을 찍어두기 때문에 나중에 옷이 상해도 고객의 잘못인지, 세탁특공대의 잘못인지를 분명히 할 수 있다.
박진우 헤이딜러 대표(왼쪽)와 직원들.
실제 헤이딜러를 이용한 고객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어느 곳이 더 비싼지 알아 보기 위해 여러 중고차 가게를 둘러볼 필요가 없다. 헤이딜러에 중고차를 등록하면 전국의 딜러가 경매에 참여하는 식으로 가격을 부르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가격이 나오면 팔면 된다. 자동차 거래에 대한 안전은 헤이딜러가 검증한다.
헤이딜러는 깐깐한 딜러 관리로 유명하다. 개인적인 이유와 엄격한 딜러 관리 등 여러 사정으로 그만둔 딜러 수가 500여 명. 하지만 점차 헤이딜러에 신뢰도가 쌓이면서 현재 800명의 딜러가 가입을 대기하고 있다. 박 대표는 “좋은 딜러 파트너와 함께 중고차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