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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시뻘건 핏자국에 꺄악∼, 발목 잡은 차가운 손에 으악∼

입력 | 2016-09-24 03:00:00

‘좀비 사파리’를 아시나요




 

이달 8일 개장한 경기 용인 에버랜드의 ‘호러 사파리’ 모습. 사자 호랑이 곰 등 맹수들이 사는 ‘사파리월드’를 야간(오후 7∼9시)에만 좀비들이 출몰하는 호러 사파리로 변신시켰다. 갑작스레 출몰하는 좀비들을 피해 버스를 타고 사파리 곳곳을 누비는 공포체험 공간이다. 에버랜드 제공

등 뒤로 ‘호러메이즈’ 문이 닫혔다. 들어오기 전 안전요원이 건네준 손전등을 켜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발밑을 겨우 비추는 크기의 작은 빨간 불빛이 켜졌다.

  ‘무서워봤자 얼마나 무섭겠어.’ 스스로를 달래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겼다. 어두컴컴한 미로 속으로 들어가자 습한 냄새와 함께 으스스한 배경음악 아래 간간이 쇠끼리 부딪히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때렸다.

 첫 번째 방은 고문실. 들어서자마자 고문의자에 앉아 죽은 듯한 모습을 연출한 좀비 인형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소름 끼치는 느낌을 뒤로한 채 스쳐 지나는 순간 맨 앞 좀비 인형이 “꾸에에에엑” 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의자에서 비틀비틀 일어섰다. 혼비백산해 비명을 지르며 뒷사람도 내팽개친 채 나도 모르게 혼자 손전등을 들고 미친 듯이 미로 속을 뛰었다.

 뒤에서 쫓아온 동행과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 오른쪽 발목에 차가운 손길이 느껴졌다. 손전등을 내려보니 어느새 바닥에 널브러진 좀비가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또 한 번 비명을 지르며 어느새 도착한 두 번째 관문. 이번엔 정신병원이었다.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스멀스멀 침상에서 일어나 다가오는 좀비에게 나도 모르게 “아저씨 그만 와요! 저 ‘엑스’요 엑스!!”라고 외쳤다. 엑스는 호러메이즈에 들어가기 전 안전요원이 중도 포기하고 싶을 경우 외치라고 한 암호다. 그 뒤로도 수술실, 연구실 등 온갖 소름 끼치는 관문들이 이어진다고 하지만 기자는 두 번째 방 입구에서 포기해 더이상 체험하진 못했다.



한국에서도 물오른 좀비 문화

 올해 첫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 ‘부산행’의 흥행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여름부터 ‘좀비 열풍’이 한창이다. ‘아이 엠 어 히어로’(일본 영화) ‘워킹데드 시즌7’(미국 드라마) 등 외국 좀비물도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11년 좀비 체험 공간인 ‘호러메이즈’를 연 에버랜드도 물오른 좀비 문화에 특수를 누리고 있다. 호러메이즈는 어두컴컴한 미로를 따라 감옥, 마취실, 수술실 등을 이동하며 공포체험을 하는 공간이다. 자유이용권에 관계없이 5000원을 따로 내야 하는 놀이시설이지만 체험자 30% 이상이 중도 포기할 정도로 극강의 공포를 자랑한다. 첫해엔 체험객 10명이 기절해서 실려 나갔다. 입소문을 타면서 이듬해 ‘호러메이즈2’가 개장했다. 2014년부터는 야간을 활용해 사파리에 맹수 대신 좀비들을 출몰시키는 ‘호러사파리’를 열었다. 현재까지 누적 관람객 수는 92만 명.

 호러 콘텐츠를 총괄기획한 유석준 삼성물산 리조트사업부 크리에이티브팀장은 “일본 유명 놀이동산인 ‘후지큐 하이랜드’의 ‘전율미궁’을 벤치마킹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공포체험 마니아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 전율미궁은 총 900m 거리를 한 시간 동안 체험하는 방식이다.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 4인 그룹별로 입장하게 했다. 앞, 뒤, 옆 어디에서 누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다 같이 긴장하게 된다.

 오감 체험을 위해 알코올과 포르말린 향을 퍼뜨렸다. 청각으로도 공포를 느낄 수 있게 비명 소리는 물론이고 전기톱 소리,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 등 각종 소름 끼치는 소리들을 끌어모았다.



좀비로 사는 사람들 

 의상 콘셉트는 영화 ‘여고괴담’과 ‘알포인트’ 등 국내 유명 공포영화 제작팀과 협업했다. 불을 켜고 봐도 무서워야 한다는 게 목표였다. 그들의 목표대로 18일 직접 찾아가 본 호러메이즈 연기자들의 연습현장은 훤한 대낮에도 충분히 무서웠다. 얼굴에 피를 칠한 채 머리는 온통 헝클어진, 반쯤 넋 나간 표정의 좀비 연기자 9명이 전면 거울을 마주한 채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우리 몸에서 머리가 제일 무겁잖아. 그래서 좀비들 머리가 아래로 고꾸라져 있는 거야. 온몸에 힘은 다 빼고, 머리가 가는 대로 몸이 쫓아가는 거야. 그 대신에 눈빛은 살아 있어야 돼. 고개는 떨어뜨려도 눈에는 힘을 팍 줘.” 

 2008년부터 에버랜드에서 호러 연기 코치를 맡고 있는 뮤지컬 배우 출신 문경택 씨가 연기자들을 가르친다. 문 씨는 “매일 하는 호러 연기가 식상해지지 않게 하려고 2, 3일마다 기본부터 다시 다지는 ‘클린업’ 연습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좀비 연기자들은 외주업체에서 오디션을 거쳐 뽑는다. 동작이 큰 연기라서 주로 연극 연기자 출신이 많다. 도합 70여 명인 이들은 한 회당 9명씩 2교대로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 좀비로 산다.

 연습이 끝나고 잠깐 만나본 좀비들은 굉장히 예의 바르고 마음이 여렸다. 엑스트라 연기자 생활을 1년 했다는 프랑스 파리 유학생 출신 이주영 씨(29)는 “체험객들이 놀라 울거나 욕을 하면 솔직히 뿌듯하긴 하지만 미안한 마음도 든다”며 “한 번은 너무 놀라서 도망치다가 발목을 삐끗한 손님이 있어 하루 종일 걱정이 됐는데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안전요원 얘기를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김주환 씨(26)는 “우리도 솔직히 처음엔 그 안에서 혼자 대기하는 게 너무 무서웠다”며 “그래도 요즘은 간식거리와 팬레터를 주는 중년 남성 팬도 생겨 할 만하다”며 웃었다.

용인=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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