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최초 한국선 1980년 ‘괴시’가 원조로 꼽혀
“좀비, 너 어디서 왔니?”
올해 약 115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부산행’은 알려진 대로 좀비 영화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로 변한 시민들이 떼거리로 달려드는 장면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원래 역사 속 좀비는 지금 대중문화에서 비치는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어원적으로 아프리카 말인 ‘은잠비(Nzambi·신)’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좀비는 아이티를 비롯한 서인도제도에서 성행하는 민간신앙인 부두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위키피디아 등에 따르면 좀비는 부두교 사제가 마술로 인간에게서 영혼을 뽑아낸 존재다. 지성과 인성을 빼앗긴 좀비는 사제의 명령에 복종하는데, 대체로 고통스러운 노동에 동원된다. 초기 좀비는 ‘자아를 잃고 끊임없이 일을 하는 노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좀비는 수많은 영화에 재등장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왔다. 사실 ‘부산행’처럼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능력’은 21세기 들어 새로이 장착됐다. 기존 영화 속 좀비는 썩은 몸을 지닌 시체이다 보니 다소 행동이 느릿느릿했다. 하지만 영국의 대니 보일 감독은 ‘28일 후’(2002년)에서 인간이 분노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가 된다는 설정 아래 강력한 신체능력을 가진 존재로 그렸다. 이후 2007년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선 사랑과 의리 같은 감정을 지닌 좀비가 등장했고 2013년 ‘웜바디스’에선 멋들어진 외모를 지니고 인간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좀비(니컬러스 홀트)까지 나왔다.
한국에서도 ‘부산행’이 첫 좀비 영화는 아니다. 일부 전문가는 무덤이 갈라지며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1967년)를 한국 좀비의 원형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서양 좀비의 특성을 잘 살린 1980년 강범구 감독의 ‘괴시’가 한국 좀비 영화의 출발로 인정받는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존재의 출현은 알 수 없는 힘에 위협받는 집단구성원의 심리적 불안정을 파고들었다”며 “한국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좀비 영화가 이런 흥행 성적을 거둔 것도 우리 사회의 현실이 잘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