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의 향기]‘NO 플라스틱’ 도전한 가족의 유쾌한 좌충우돌

입력 | 2016-09-24 03:00:00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류동수 옮김/320쪽·1만4000원·양철북




‘플라스틱 없는 삶’에 도전하기 직전 저자 가족의 모습. 영화 ‘플라스틱 행성’을 만든 베르너 보테 감독(가운데 선 이)의 제안으로 집에 있던 플라스틱 제품을 모두 끄집어 낸 후 산더미 같은 양에 아연실색한다. 저자는 “친환경적인 삶을 산다고 믿었던 나의 안일함과 무지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양철북 제공

 

화학제품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기자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가습기에 꼬박꼬박 부어 썼던 살균제만 모아도 몇 박스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화학제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꽤 도발적인 이 책에 눈길이 간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남편과 세 아이를 둔 저자는 2009년 베르너 보테 감독의 영화 ‘플라스틱 행성’을 본 후 정신이 번쩍 드는 충격을 받는다.(이 영화는 2011년 국내에서도 상영됐다.) 세계의 가정집에서 플라스틱 물건을 모조리 집 밖으로 꺼내 전시하고 플라스틱으로 범벅이 된 곳곳을 보여준 것.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물질은 기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유독성 여부를 알 수조차 없는 현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려서부터 쓰레기 만드는 걸 싫어했던 저자는 세 아이를 천 기저귀로 키우고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는 데 만족하던 사람이었다. 물론 이도 보통 수준은 넘는다. 가족의 지지 속에 시작한 이 실험은 플라스틱 없는 삶이 정말 가능할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2년간의 여정을 따라가게 만든다.

 첫 번째 장보기 결과는 처참했다. 플라스틱 손잡이가 없는 주전자는 찾을 수 없었고 친환경제품 전문 매장에서조차 비닐 포장이 안 된 상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이들이 아니었다. 가족,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블로그를 통해 도움을 구하며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종이에 포장된 화장지를 구하지 못해 뒤처리를 할 때 신문지나 나뭇잎, 인도식으로 왼손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까지 논의하며 기겁한다. 그러다 골판지 상자에 담긴 종이 손수건을 찾아내고 종이 상자에 담긴 면류를 파는 슈퍼마켓을 발견할 때면 함께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환경보호라는 무게감에 짓눌리는 대신에 보물찾기를 하듯 즐기는 이들의 실험기는 유쾌하다. 블로그에 연재한 글을 엮어 책으로 펴냈기에 구어체로 정리된 데다 우리말로 재치 있게 번역돼 에너지가 통통 튀는 이야기꾼을 마주한 기분이다.  

 텔레비전, 냉장고, 청소기, 컴퓨터처럼 대체할 수 없는 제품은 사용하고 가족 각자의 취향을 존중한 점은 실험의 지속성에 힘을 더했다. 실제 저자의 남편은 나무 칫솔대에 돼지털이 꽂힌 칫솔에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냥 길을 한번 떠나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는 저자의 생각은 압박감으로 인한 부담을 덜어내는 주문 같다.  

 실험이 계속되면서 저자는 끝없는 소비를 통해 지탱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실감하게 된다. 살 물건은 신중하게 선택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쓰지 않음으로써 점점 간소한 삶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직접 키운 토마토에 모차렐라 치즈를 얹어 먹는 가족의 큰 기쁨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는 대목에서는 짠한 마음도 든다. 모차렐라 치즈는 이탈리아에서 들여오기에 비닐로 포장되지 않은 건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인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양철북 제공

저자는 말한다. 실험을 시작한 이후 삶이 훨씬 안락해졌고 실험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고. 그는 지방의회 의원에 선출된 데 이어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책을 덮고 나니 주위의 온갖 플라스틱 제품이 매직아이처럼 눈에 들어왔다. 작은 변화가 시작된 것 같다. 원제는 ‘Plastikfreie Zone’.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