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파울로 코엘료 지음/오진영 옮김/224쪽·1만2500원·문학동네
관능적이고 매력적인 무희로 당대 권력자들과 염문을 뿌렸고 전쟁 중 이중 스파이로 지목됐던 여성 마타 하리. 파울로 코엘료는 이 유명한 여성의 삶을 강렬하고도 위태롭게, 그러면서도 독자적으로 살았던 인생으로 그린다. 문학동네 제공
그는 마타 하리에 대해 이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마타 하리는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로 그 시대 남성들의 요구에 저항하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인 삶을 선택했다.” 코엘료가 펼쳐 보이는 마타 하리의 삶의 서사는 이 관점이 뚜렷하게 녹아 있다.
마타 하리는 이국적인 매력으로 인기를 모으는 무용수가 되고 이어서 관료들과 어울리면서 프랑스 사교계를 드나들게 된다. 작가는 마타 하리가 오스카 와일드, 프로이트,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과 교류를 나누는 장면도 유머를 가미해 흥미롭게 보여준다. 독일 정보부가 그에게 스파이 임무를 제안하고 프랑스 당국이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하는 과정은 알려진 대로 흘러가지만 작가는 마타 하리의 자의식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작가는 마타 하리를 애국적이진 않았지만 자신의 독립성을 위해 움직인 여성으로 그린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이고, 무엇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훗날 내 이름이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 치러야 할 대가를 당당히 치른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코엘료의 다른 소설이 그렇듯 책은 빠르게 읽힌다. 역사소설이지만 작가는 사료를 꼼꼼하게 반영하지 않고 얼개만 유지하면서 마타 하리라는 여성의 내면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실제 마타 하리가 스파이였는지는 아직도 모호하지만, 코엘료가 불러낸 마타 하리는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여성이자 21세기에 걸맞은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