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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요구대로 학과 개편… 대학들 개성 잃고 획일화 우려

입력 | 2016-09-26 03:00:00

[프리미엄 리포트/2016 대한민국 대학 현주소]
위기의 대학 “지원예산 따내야”
취업률 높이려 이공계 쏠림 심화… 학문 영역 비슷… 다양성 사라져

학령인구 급감에 유학생 유치 경쟁
무슬림 기도실에 할랄음식 제공… 일부 학교 ‘캠퍼스 공유’ 실험도




 “예산을 생각하면 교수 한 명 더 뽑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예요.”

 명문대로 꼽히는 서울지역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5년 이상 이어진 등록금 동결 탓에 어려움이 많다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는 각종 평가 때문에 전임교원 확보율 등 교육 여건은 개선해야 하는데 예산은 한계 상황에 이르러 거의 모든 대학이 예산이 걸려 있는 각종 정부 사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 재정·취업 압박 속 대세는 ‘이공계’

 이런 상황에 놓인 대학들에서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이공계 중심의 구조 개편이다. 대학 졸업자 공급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오는 인문계 전공을 이공계 전공으로 바꾸는 것은 대학으로서는 일석이조의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각종 평가가 상시화된 상황에서 취업률과 연구 성과라는 핵심 평가지표를 함께 끌어올릴 수 있고, 이는 추가적인 예산 사업 확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광진구의 세종대는 전통적으로 호텔관광과 애니메이션 분야 교육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이공계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세종대는 1997학년도만 해도 이공계 3개 학과 정원이 전체 신입생 1340명의 35.8%인 48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2017학년도에는 정원 2320명 가운데 65.0%에 이르는 1508명(25개 학과)이 이공계로 분류된다. 내년에 첫 신입생을 뽑는 소프트웨어 융합대는 정원이 502명에 이른다. 이 대학 김승억 부총장은 “앞으로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등에서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으로 보고 소프트웨어 관련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국대는 교육부의 프라임 사업에 선정되면서 바이오공학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21개 대학에 3년간 총 6000억 원을 나눠주는 프라임 사업의 정식 명칭은 ‘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이다. 강황선 건국대 교무처장은 “프라임 사업 추진은 예산 확보는 물론이고 자극이라는 측면에서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3년간 450억 원의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 학교 전체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자극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 이슬람 기도실 만들고, ‘대학 공유’도


  ‘인구절벽’으로 인한 학령인구 급감을 앞두고 있는 대학가는 외국인 학생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올해 학위·비학위 과정 외국인 유학생은 10만 명을 넘어섰다. 서울 성동구 한양대는 학생식당에서 주 4회 할랄 음식을 제공하고 무슬림 기도실도 만들었다. 전체 2000명가량의 외국인 학생 가운데 무슬림 학생은 80명 정도에 그치지만 외국인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은 학교가 마련하고 있다는 ‘사인’을 보내는 의도도 있다.

 학생 수 감소에 대한 걱정은 지방 대학이 더 크다.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이 뚜렷한 상황에서 대학가에서는 그동안 ‘꽃이 지는 순서대로 대학이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왔다. 이런 상황은 적극적으로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부산 동서대와 경성대는 이런 선제 대응의 대표 사례다.

 두 대학은 최근 캠퍼스와 교수진을 교류하기로 합의했다. 각자 강점과 경쟁력을 갖는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시스템을 구축해 비용을 줄이면서도 더 나은 교육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동서대는 이미 2011년 아시아권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중국과 합작대학을 설립했다. 중국 후베이(湖北) 성 우한(武漢)에 설립한 동서대 제2캠퍼스는 중국 학생들이 일정 기간 동서대 한국 본교에서 강의를 듣도록 하고 있다.

 26일에도 중국을 찾는다는 장제국 동서대 총장은 “태풍이 몰아쳐도 침몰하지 않고 살아남는 배가 있듯이 어려운 시기를 넘기면 더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으로 먼저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학의 획일화 경계해야”

 대학의 이런 급격한 변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학이 당장의 취업률만 바라보면 지나치게 한 곳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부가 좋게 말하면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나쁘게 말하면 ‘갑질’을 하며 대학을 이끄는 상황”이라며 “대부분의 재정지원사업이 요구하는 지표가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대학이 획일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 당장 취업률이 높은 분야라고 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인력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고등교육 공학계열 취업률은 2011년 69.3%로 정점을 찍은 뒤 2012년 69.0%, 2013년 68.6%, 2014년 66.9%로 집계됐다. 2014년 고등교육 전체 취업률 58.6%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지만 최근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 전반을 끌고 갈 대학이 재정 지원만 바라보는 수동적 기관이 됐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의 보직교수는 “지금 배가 고픈 대학들은 학교의 철학과 큰 틀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사업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등록금 인상을 강제로 틀어막아 놓고 일부 사업으로만 지원금을 나눠 주면서 대학 내·외부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급격히 늘어난 외국인 유학생 문제 역시 일부 대학에서는 수학능력이 부족한 학생을 유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학알리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년제 대학의 학위과정 유학생 3만7098명 가운데 한국어나 영어능력 기준을 채우는 학생의 비율은 38.8%(1만4385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김도형 dodo@donga.com·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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