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2016 대한민국 대학 현주소] 학생들 “의견수렴 없이 일방 추진” 이대-동국대 ‘평생교육 단과대’ 홍역… 숙대 ‘대학원 남학생 허용’ 놓고 시끌 학교측 “학생 전체 뜻 아니다” 총학생회 “학교 이미지 추락” 대학측 “개혁 안하면 생존 못해”
본관 점거… 천막 농성… 몸살 앓는 상아탑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난 등을 타개하기 위해 대학들이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맞선 학생들의 점거 농성도 계속되고 있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지난달 3일 시위 학생들 앞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철회를 발표하고 있다(맨위쪽 사진). 21일 서울대(가운데 사진)와 동국대 캠퍼스에서도 학생들이 각각 시흥캠퍼스 철회와 비리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였다. 최혁중 sajinman@donga.com·홍진환 기자
이화여대 캠퍼스 곳곳엔 총장 책임론을 주장하는 현수막과 대자보, 포스트잇 등이 가득했다. 평생교육 단과대 사업에 반대하며 시작된 학생들의 본관 점거 시위로 학교 측은 8월 초 사업 철회를 선언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총장 사퇴’를 외치며 60일째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20, 22일에 이어 27일에도 교내 행진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교육부의 등록금 동결 조치로 빚어진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대학들이 각종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집단행동이 거세지고 있다. 과거 1980, 90년대 후반까지는 민주화, 학원자주화 등 거대 담론이나 등록금 인하 등이 시위의 주된 구호였다면 최근에는 대학 구조조정 반대, 총장 사퇴 등 이슈가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대안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국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11일 재학생 12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평생교육 단과대에 반대하는 취지의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동국대는 이미 평생교육 단과대를 설립해 학생을 뽑고 있지만 이화여대 사태를 지켜본 학생들이 다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 측은 ‘총학생회가 평의회에서 평생교육 단과대에 동의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올해 초 교육부가 프라임(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을 추진했을 때도 일부 대학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대 총학생회는 3월 총장실 앞 로비 점거 농성을 벌이며 학교 측과 대립했고 인하대 숭실대 등에서도 시위가 잇따랐다. 학교 측이 학생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은 채, 준비도 미진한 채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이유였다. 세 학교는 결국 프라임 사업에서 탈락했다.
학생들이 반발하는 까닭은 다양하다. 학교 측의 소통 부재, 인문학 경시 풍조 등을 비난하는 목소리와 함께 학교의 ‘브랜드 가치’, 나아가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한다. 지난해 숙명여대는 일반대학원에 남학생 입학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학생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학교 측은 연구역량 강화, 재정난 해소 등을 명분으로 남학생 입학 허용을 주장했지만 학생들은 “여대로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대했다.
이화여대 사태 또한 ‘명문 여대’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동문들과 재학생들의 자부심이 큰 변수가 됐다. 직장인 재교육을 위한 평생교육 단과대에는 특성화고교 출신 150명이 일반 학생들과 다른 전형으로 입학해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뒷문으로 들어온 평생교육 단과대 학생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되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일부 이대생의 빗나간 의식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학 측이 학생들과 충분한 소통 없이 학내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문제지만 심각한 위기 속에서 틀을 바꿔 보려는 학교의 시도를 무작정 ‘악(惡)’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서울대는 다음 달 10일 열리는 학생총회를 앞두고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총회에서는 지난달 학교 측과 경기 시흥시가 맺은 ‘서울대 시흥캠퍼스 조성 실시협약’의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서울대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설립을 반대하며 1일부터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학교 측은 실시협약 체결 직전에야 총학생회에 체결 예정 사실을 알렸고, 캠퍼스 조성 비용의 일부가 학생들에게 전가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도 구체적 해명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총학생회의 의견이 학생 전체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 올해 총학생회 자체 설문조사에서 참여자 63.2%가 ‘시흥캠퍼스 전면 반대’에 표를 던졌지만 투표율은 28.9%에 그쳤다. 서울대 본부 관계자는 “시흥캠퍼스 자체가 연구 중심으로 가기 때문에 학부생과는 애초에 큰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사태도 마찬가지다.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학생들 외에 졸업생 수백 명이 평생교육 단과대 설립에 반대하며 졸업장을 반납했다. 그러나 ‘이화여대 정상화를 바라는 졸업생들의 모임’은 지난달 16일 한 일간지에 ‘총장 사퇴를 목표로 진행되는 재학생과 일부 졸업생들의 농성에 공감할 수 없다’는 의견광고를 내기도 했다.
○ ‘느린 민주주의’의 한계
서울의 한 사립대학 홍보팀 관계자는 “학생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의 개혁을 시도하는 학교 측의 사정도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라며 “원활한 소통을 통한 의견 조율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최지연 lima@donga.com·차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