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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쾅… 경보기 대신 현관문이 울렸다… 새벽, 이웃 깨운 김경태씨

입력 | 2016-09-26 03:00:00

서울 도봉구 화재때도 의인…
12층서 1층까지 내려가며 발로 문 차는 등 주민 대피시켜
일가족 3명 사망… 더 큰 피해 막아




 “화재 경보도 울리지 않았고 화재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한 아파트 13층에서 24일 오전 4시 반경 화재가 발생을 때 바로 옆집 주민 조모 씨(59)는 깨어 있었지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발로 차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불길이 복도까지 번진 후라 대피도 할 수 없었다. 조 씨는 창가에 붙어 연기를 피하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에게 가까스로 구조됐다.

 이번 화재로 3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했지만 화재 안전 시스템의 부재 탓에 자칫 더 큰 대형 참사로 번질 뻔했다. 1991년 완공된 이 아파트 단지는 3개 동에 총 408가구가 살고 있지만 온전한 소방 시설이 없었다. 불이 난 집의 이모 씨(21)는 실내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복도의 소화전을 끌어다 쓰려 했지만 불길을 잡지 못했다.

 이 씨가 소화전을 끌어오며 누른 화재경보기는 뒤늦게 울렸다. 주민 대부분은 불길이 번져 대피할 때에야 벨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관리사무소 측은 화재 발생 시 비상 대피 안내 방송도 하지 않았다. 관리사무소 측은 “화재 발생을 알리고 비상 대피를 지시하는 방송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주민 누구도 이를 들은 사람은 없었다.

 미처 아래로 대피하지 못하고 불길을 피해 우왕좌왕하던 14, 15층 주민들은 옥상 비상구마저 잠겨 있어 집 안에서 물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주민 김모 씨(60)는 “옥상 문이 잠겨 집 안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아파트는 화재 대피 훈련을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화재와 같은 위급 상황이 발생할 때 언제든지 부수고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는 가벽이 설치돼 있지만 이를 아는 주민은 많지 않다. 비상 훈련을 통한 지속적인 교육과 상기가 필요한 이유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숨진 일가족 3명은 베란다와 반대 방향을 향한 채 방 안에서 연기에 질식했거나 불길을 피하려 아래로 뛰어내리다 변을 당했다.

 결국 이번에도 한 주민의 다급한 발길질이 대형 참사를 막았다. 12층에 사는 김경태 씨(47)는 화재 현장의 불을 끄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자 아래로 내려가며 집집마다 발로 문을 차고 소리를 지르며 화재 사실을 알렸다. 잠이 깬 주민들도 이웃집 초인종을 눌러 함께 대피했다. 김 씨는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며 “나 말고도 주민들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쳤다”고 말했다. 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화재도 불길 속에서 이웃집 문을 두드린 ‘화재 의인(義人)’ 고 안치범 씨의 희생이 있었기에 추가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이번 화재가 일어난 아파트처럼 낡은 아파트나 원룸형 다가구주택은 강화된 방재 시설 기준의 적용을 받지 않는 등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어 옥내 소화전, 스프링클러 등의 설비를 갖추지 않은 곳이 많아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화재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방재 시스템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백동현 가천대 소방방재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나서 안전 설비 기준을 강화하고 모든 공동주택에 화재 감지기를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며 “언제까지 의인들에게 의존할 것인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