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 화재때도 의인… 12층서 1층까지 내려가며 발로 문 차는 등 주민 대피시켜 일가족 3명 사망… 더 큰 피해 막아
“화재 경보도 울리지 않았고 화재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한 아파트 13층에서 24일 오전 4시 반경 화재가 발생을 때 바로 옆집 주민 조모 씨(59)는 깨어 있었지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발로 차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불길이 복도까지 번진 후라 대피도 할 수 없었다. 조 씨는 창가에 붙어 연기를 피하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에게 가까스로 구조됐다.
이번 화재로 3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했지만 화재 안전 시스템의 부재 탓에 자칫 더 큰 대형 참사로 번질 뻔했다. 1991년 완공된 이 아파트 단지는 3개 동에 총 408가구가 살고 있지만 온전한 소방 시설이 없었다. 불이 난 집의 이모 씨(21)는 실내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복도의 소화전을 끌어다 쓰려 했지만 불길을 잡지 못했다.
미처 아래로 대피하지 못하고 불길을 피해 우왕좌왕하던 14, 15층 주민들은 옥상 비상구마저 잠겨 있어 집 안에서 물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주민 김모 씨(60)는 “옥상 문이 잠겨 집 안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아파트는 화재 대피 훈련을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화재와 같은 위급 상황이 발생할 때 언제든지 부수고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는 가벽이 설치돼 있지만 이를 아는 주민은 많지 않다. 비상 훈련을 통한 지속적인 교육과 상기가 필요한 이유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숨진 일가족 3명은 베란다와 반대 방향을 향한 채 방 안에서 연기에 질식했거나 불길을 피하려 아래로 뛰어내리다 변을 당했다.
결국 이번에도 한 주민의 다급한 발길질이 대형 참사를 막았다. 12층에 사는 김경태 씨(47)는 화재 현장의 불을 끄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자 아래로 내려가며 집집마다 발로 문을 차고 소리를 지르며 화재 사실을 알렸다. 잠이 깬 주민들도 이웃집 초인종을 눌러 함께 대피했다. 김 씨는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며 “나 말고도 주민들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쳤다”고 말했다. 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화재도 불길 속에서 이웃집 문을 두드린 ‘화재 의인(義人)’ 고 안치범 씨의 희생이 있었기에 추가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이번 화재가 일어난 아파트처럼 낡은 아파트나 원룸형 다가구주택은 강화된 방재 시설 기준의 적용을 받지 않는 등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어 옥내 소화전, 스프링클러 등의 설비를 갖추지 않은 곳이 많아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