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종석 기자
닷새 전, 국내 프로축구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위원이 한 골 차로 뒤지고 있던 팀에 대해 대략 이런 말을 한다. “요즘 벤치 분위기가 가장 좋은 팀입니다. 쉽게 패하지는 않을 거예요. 남은 시간 동안 뒷심 발휘를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합니다.”
경기는 그라운드 안에 있는 주전 선수 11명이 뛰고 있는데 뒷심을 기대하는 이유는 벤치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설위원의 말대로 벤치 분위기의 힘이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이 팀은 결국 후반에 한 골을 따라붙어 패배를 면했다.
다시 감독 A 얘기로 돌아가서.
골이 들어갔을 때 A가 뒤돌아보는 건 벤치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좀 더 정확히는 벤치에 앉은 선수들의 순간 표정을 읽으려는 것이다. “우리 팀이 골을 넣었다고 벤치에 있는 선수들이 다 좋아할 걸로 생각하면 그 사람은 순진한 감독입니다. 뭘 잘 모르는 거예요. 전부 다 벌떡 일어나 환호하는 팀도 물론 있겠죠. 또 그러면 제일 좋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도 드문드문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골을 넣은 팀 동료와 사이가 나쁜 선수가 있을 수 있다. 꼴 보기 싫은 놈이 골 넣고 좋다고 하는데, 부처가 아닌 다음에야 벌떡 일어나지겠나…. 주전 경쟁 상대가 골을 넣어도 그럴 수 있다. 내 자리가 흔들리는 판인데 환호가 나올 리 없다. 감독이 싫어 그럴 수도 있다. 기량이 좋은(?) 자신을 벤치에만 앉혀 놓는 감독이 잘되는 게 싫다. A는 팀이 골을 먹었을 때 순간적으로 양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벤치 선수를 본 적도 있다. 이런 걸 당연하다고 보긴 뭣해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A는 이런 걸 평소에 봐 뒀다가 적당한 기회를 봐서 수습에 나선다. 한 명이라도, 이런 선수를 그냥 두는 건 팀에 도움이 안 된다.
방법은 두 가지다. 선수가 알아듣게 설명하거나 적당한 때를 봐서 다른 팀으로 보내 버리거나. “선수 얘기를 들어 보면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잘 얘기해서 다독거리죠.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분위기를 계속 흐리려는 선수가 있어요. 그러면 내보내야죠.”
동주공제(同舟共濟). ‘동주’는 같은 배를 말하고, ‘공제’는 힘을 합해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 ‘같은 배를 타고 힘을 합쳐 강을 건넌다’는 얘기인데, 사람 일이 어디 꼭 그런가. 같은 배에 올랐어도 벤치에서 보듯 딴마음인 경우가 있다. ‘감독이 빨리 잘려야 내가 그 자리를 물려받을 텐데…’ 하는 코치도 있을 것이다. 직장에도, 학교에도, 사적인 모임에도 비슷한 경우는 널렸다. 나한테 좋은 일이 있을 때 입술을 다물고 가늘게 실눈을 뜨거나,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양 입꼬리가 올라가는 사람들이 같은 배에 없는지 잘들 한 번 보시기를….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박수를 보낸다. 진심으로….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