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놓은 지진 대책들은 부스러진 면발처럼 딱딱하고, 단편적이고, 생기가 없다 ‘인간’이 빠진 지진 대책에 교육, 시간, 역할 개념을 넣어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 준비조차 않고 설렁설렁하면 다음 진원지는 분명 땅속이 아니라 인간이 될 것이다
심규선 대기자
모두들 최고의 지진 대책은 ‘빠른 통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도 일본처럼 5초 이내에 지진을 알리게 됐다고 치자. 그러면 국민은 안전한가. 피난 연습은커녕 대피 매뉴얼조차 본 적이 없는 국민들이 조금 일찍 경보를 받았다 한들, 생명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정부의 대책에는 가장 중요한 ‘인간’이 빠져 있다. 재난지역 선포도, 활성단층 조사도 돈과 숫자만 눈에 들어올 뿐 인간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 이와테 현 항구도시 가마이시(釜石) 시의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거의 전부가 목숨을 건졌다. ‘기적’이라고 했다. 1933년과 1960년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었던 시 당국은 ‘쓰나미는 각자(各自)’라는 교육과 훈련을 강력하게 실시했다. 해안이 크게 흔들리면 ‘가족도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높은 곳으로 도망치라는 것이었다. 기적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의 결과였다.
방재선진국 일본의 경험은 국민이 국가기관만 의지하는 응석받이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걸 시사한다. 이를 포함해 지진 대책에는 반드시 교육, 시간, 역할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 학교, 지역사회, 기초행정기관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재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대형 재난이 일어나면 단기적으로는 생명, 중기적으로는 생활, 장기적으로는 생업, 즉 3생(生)을 구해야 한다. 시간별로 다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안전처와 기상청만 동네북처럼 팬다고 될 일도 아니다. 국민, 기초단체, 광역단체, 국가가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대피 매뉴얼 작성과 교육 실시, 지역사회 방재 네트워크 구성(자치소방대), 통보시스템 개선과 지진 전문가 양성, 피해 주택 재건축과 내진 건축의 확대, 피해자와 기업에 대한 재정 지원, 피해 주민들의 심신 케어, 산업과 관광 부흥, 단층과 원전 부지의 적정성 규명, 문화재 복구 등의 방대한 시나리오를 혼자서 만들 수는 없다.
지금 이런 고민을 누가 하고 있나. 정부가 하고 있다고? 그럼 공개 시점을 공개하라. 안 하고 있다면 당장 각 기관과 부처에 숙제를 내주고 공개하길 바란다. 알아야 덜 불안하다. 알아야 덜 비난한다.
뭐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느냐고, 한술에 배가 부르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예측이 가장 힘든 지진 앞에서는 무책임한 말이다. 이달 1일부터 사흘간, 4월에 리히터 규모 7.3의 대형 지진이 일어났던 일본 구마모토 현과 오이타 현의 복구 상황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관련 기관들은 앞에서 예시한 모든 시나리오를 열심히 적용하고, 검증하고, 수정하고 있었다. 가바시마 이쿠오 구마모토 지사는 그 과정을 아카이브로 만들어 세계와 공유하겠다고 했다. 내가 본 일본 지진 대책의 특징은 행정은 빠르고, 복구는 멀리 보고, 주민은 만족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큰 걱정이 생겼다. 우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반인 신뢰를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미증유의 대재앙인 3·11 대지진 때문에 사법 처리를 당한 일본인은 한 명도 없다. 비슷한 경우, 우리는 누군가를 감옥에 넣어야 만족했을 것이다. 다음번 더 큰 지진이 일어난다면 진원지는 분명 땅속이 아니라 인간이 될 것이다. 그러니 정부는 준비라도 철저히 해둬야 한다. 설렁설렁하지 말고.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