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인 권오병 문교부 장관은 16, 18대 문교부 장관을 지냈고 그 사이에는 법무부 장관으로 일했다. 사립대 휴업령, 한일회담 반대 교수와 학생 축출 및 징계, 국민교육헌장 강행이 꼬리를 물었다. 재임 기간 내내 문교행정은 그야말로 좌충우돌했다. 1969년 임시국회 때 한 의원에게 “그따위 발언 취소하라”고 대들어 여야 의원들이 들고일어나자 “그런 말은 속기록에 없잖아, 속기록을 봐”라고 반말하다 해임안이 가결됐다. 여당인 공화당 소속 40여 명이 반란표를 던졌다. 3선 개헌으로 장기 집권을 노린 박정희 대통령을 견제하려는 당내 갈등 탓이었다.
▷2년 뒤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올려왔다. 실미도 사건 등으로 치안 공백을 노출했다는 이유다. 여당은 누구도 동조해선 안 된다는 박 대통령의 엄명을 어기고 3선 개헌에 앞장섰던 공화당 실세 ‘4인 체제’(김성곤 백남억 길재호 김진만)가 ‘10·2 항명’을 일으켰다. 중앙정보부가 출동해 김성곤은 콧수염까지 뽑혔고 20여 명의 항명 의원들도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