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닭이 행복해야 육질도 최고”… 넓은 공간서 뛰놀아

입력 | 2016-09-27 03:00:00

동물복지형 닭 사육농장 현장




 

전북 정읍시 태인면의 ‘헵시바농원’. 다른 농장보다 닭들의 밀도가 낮고 톱밥 더미를 설치해 닭의 쪼는 욕구를 해결했다. 동물 복지를 실현한 이 농장의 닭은 소비자에게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롯데마트 제공

 ‘동물이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하다.’

 동물 복지는 1970년대 유럽에서 퍼지기 시작한 개념이다. 동물이 건강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본래의 습성을 제약받지 않고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국내에서도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2년 3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가 처음 시행됐다. 계란을 낳는 ‘산란계’가 첫 대상이었다. 2013년 돼지에 이어 지난해 ‘육계’를 기르는 농장 중에서도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곳이 나왔다. 현재 산란계, 돼지와 육계를 비롯해 동물복지 농장 인증 대상은 한우 육우 젖소 염소 등이 있다. 20일에는 경기 안성시에 있는 젖소 농장이 1호 동물복지 젖소농장으로 인증을 받았다. 정부는 오리도 올해 안에 동물복지 대상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 건강하게 뛰노는 닭들

동물 복지를 실현한 농장보다 닭들의 밀도가 훨씬 높은 일반 농장. 롯데마트 제공

 최근 찾은 전북의 한 닭 사육 농장. 안으로 들어서자 흰색 닭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닭들이 노는 곳에 빈 공간은 찾기 힘들었다. 닭들이 사료나 물을 먹으려고 이동하다 보면 서로 뒤엉키기 일쑤였다. 닭 중 상당수는 엉덩이가 빨갰고 일부는 상처가 난 경우도 있었다. 농장주는 “닭들은 쪼는 습성이 있는데, 쫄 수 있는 대상이 없다 보니 다른 닭의 엉덩이를 쪼아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보통의 닭 농장 풍경이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의 ‘헵시바농원’은 다르다. 이곳은 지난해 10월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인증받은 곳이다. 이곳의 닭들은 한눈에 봐도 마릿수가 적었다. 닭들은 농장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농장 중간에는 긴 홰(새나 닭이 올라앉게 가로질러 놓은 나무 막대)가 설치돼 있었다. 높은 곳에 날아올라 앉으려는 닭의 습성을 고려한 것. 이 습성 때문에 일반 농장에서 닭들이 급수대나 사료공급대에 올라가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사료나 물이 오염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오염을 피할 수 있도록 홰를 설치하는 것은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농장 곳곳에는 닭들이 쪼는 욕구를 해소하도록 톱밥 더미가 있었다.

 농장 한편에는 분리된 공간도 있었다. 이곳에도 닭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발육이 더딘 닭들이다. 경쟁에서 도태된 닭들을 분리해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성장도 뒤처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농장에 창문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창문을 열고 닫을 때 오염 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을 없앤 것이다. 공기 정화와 환기는 환풍기와 냉각기를 통해 이뤄졌다. 농장 외부에는 강철 소재로 만들어진 급료 탱크가 있었다. 일반 농장에 있던 플라스틱 급료 탱크에 비해 덥거나 추운 외부 기온 변화의 영향을 덜 받는다. 그만큼 사료가 변질될 우려가 작다.

 헵시바농원을 운영하는 박세진 씨(57)는 “식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동물도 존중받으며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시기가 올 것이라는 생각에 동물복지 농장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 확산되는 동물복지 인식

 사육 농장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거기서 나오는 모든 축산물이 ‘동물복지 고기’인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축산물에 동물복지 인증 마크를 붙이려면 도축과 운송 과정에서도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육계의 경우 도축장으로 가는 차량에 실을 때 던져서는 안 된다. 닭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축 뒤에도 피가 잘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세균 번식 가능성도 크다.

 축산업계에서는 동물 복지가 확산되려면 대형 생산업체와 유통업체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헵시바농원은 닭고기 생산업체인 참프레와 계약을 맺고 동물복지 닭을 기르고 있다. 참프레는 동물복지 닭고기 생산을 위해 전북 부안군 행안면에 동물복지형 도축장을 마련했다. 이 도축장은 일반 도축장과 달리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조절해 닭을 기절시킨다. 일반 도축장에서는 수중에서 전기충격을 줘 닭을 기절시킨 뒤 도축한다. 조성욱 참프레 마케팅실 이사는 “일반 닭고기에 비해 마리당 생산비용이 20% 비싸 판매 가격도 고가이지만 소비자에게 충분히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통업체 중에서는 롯데마트가 적극적이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10월부터 대형마트에서는 최초로 참프레에서 생산하는 동물복지 닭고기를 판매 중이다. 롯데마트는 동물복지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점차 커지면서 시장이 크게 확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마트에서 동물복지 달걀의 매출이 전체 달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1.2%에서 지난해 2.5%로 두 배 이상으로 상승했다. 박성민 롯데마트 축산 상품기획자는 “동물복지는 조만간 소비자의 상품 선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본다”며 “유통업체가 동물복지 인식 확산에 나선다면 이는 축산업의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읍=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