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부국장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이 같은 발언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런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야당의 의혹 제기를 비판하는 듯한 말을 덧붙인 데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권력 핵심부 연루설이 나도는 재단이 신청 하루 만에 설립 허가가 나고 대기업들이 단번에 800억 원에 육박하는 거액을 조율이나 한 듯이 내놓았다 해서 정치적 논란이 큰 사안을 굳이 안보문제에 연결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국가 안보와 국민 안위를 지키는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거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 국민이 단호한 자세로 하나가 돼야 한다”는 박 대통령 자신의 말까지 퇴색시킬 수 있는 ‘사족(蛇足)’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다음 날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과 관련해 “유언비어에 대해서는 의법 조치도 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한술 더 떠 야당을 자극했다.
국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24일 박 대통령은 장차관 워크숍에서 “20대 국회에 국민이 바라는 상생의 국회는 요원해 보인다. 우리 정치는 시계가 멈춰 선 듯하고 정쟁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일각이 여삼추가 아니라 ‘삼추가 여일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조급한 마음”이라고 하고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라는 가사의 ‘달리기’와 “어리석은 세상은 너를 몰라”라는 가사가 들어 있는 ‘버터플라이’를 애청곡으로 소개한 심정도 모를 바 아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렇게 덧붙였다면 어땠을까. “저는 (여소야대를 낳은) 4·13총선 이후 민의를 겸허히 받들겠다고 말씀드린 걸 여러분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점도 없지 않지만 북핵 대응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저부터 손을 내밀고 협치를 요구한 국민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라고. 박 대통령은 정반대로 김 장관 해임안 수용을 거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1996년 15대 총선 이후 탄생한 여소야대 국회와 대화하기보다는 ‘역사와의 대화’에 매달리다 외로운 임기 말을 맞이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국정을 책임지고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다른 길도 있음을 고언하는 참모는 없단 말인가.
박성원 부국장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