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민 채널A 정치부 기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에 상정된 23일 늦은 점심 무렵이었다. 새누리당의 긴급 의총 탓에 의사 일정이 늦어져 국회 매점에서 뒤늦게 끼니를 해결하려던 참이었다. 마침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정 원내대표를 만난 것이다. 누가 먹던 음식이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냉큼 집어 먹을 줄 아는 모습에 소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밥을 먹지 왜 라면으로 배를 채우느냐”라며 나와 기자들의 ‘끼니 걱정’도 아끼지 않았다. 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누던 그가 밖으로 나갔다. 둘러보니 창 밖에서 누구와 한참 통화를 하다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자욱한 담배 연기에 둘러싸인 그의 뒷모습. 여소야대로 열세가 분명한 상황에서 전투를 앞두고 고뇌하는 장수를 연상케 했다. 이 모든 게 그날 밤 벌어질 사상 초유의 본회의장 ‘밥 타령’의 복선이었을까.
‘육참골단’이라는 말이 있다. ‘살’을 내주고 상대 ‘뼈’를 끊는다는 말로 정 원내대표도 검찰 개혁을 언급하며 사용했던 말이다. 하지만 그가 ‘김재수 살리기’ 방식으로 선택한 ‘밥 타령’은 가히 ‘뼈’를 내주고 ‘살’만 취한 ‘골참육단’의 꼴이었다. 국무위원 끼니를 염려하며 30분간 의사 일정을 지연시키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본인 스스로를 본회의장에서 ‘밥 타령’이나 한 원내대표로 기억하게 했으니 말이다.
이날 본회의장에서는 다른 여당 의원과 국무위원의 태도도 가관이었다. 특히 질문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국무위원의 답변을 길게 듣는 방식으로 시간을 끈 것은 ‘창의성’이 돋보였다. 마지막 질문자로 나선 새누리당 이우현 의원은 국무위원을 일일이 한 명씩 불러내 “환경부 장관 취임한 포부에 대해 다 말해 보라”라는 식으로 혼자서 100분 동안 질의를 이어갔다. 같은 당 의원도 황당한 듯 웃었고, 본인도 멋쩍은 듯 웃었다. 국무위원들도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길게 답변했다. 여소야대의 분위기에 취한 일부 야당 의원은 국무위원을 인격적으로 낮춰보며 소리치는 몰상식함을 드러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준 낮은 우리 정치의 ‘민낯’을 지켜보고 돌아서는 새벽 2시의 퇴근길이 씁쓸했다.
조영민 채널A 정치부 기자 y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