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태풍이나 지진해일과 달리 지진은 ‘보이지 않는 위협’이다. 따라서 다른 재해보다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지진이 일어난 적 없는 곳에서는 지진 공포가 거의 없지만, 일단 경험하면 그 두려움이 지속적으로 삶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경주 지진에서도 강진을 직접 겪은 주민뿐 아니라, 가까운 대구나 부산 등의 지역 주민도 불안을 느낀다. 나아가 TV 등 영상매체를 통해 지진 장면을 지켜본 국민들도 불안과 공포를 경험한다.
이들은 수시로 지면이 떨리거나 몸이 흔들리는 느낌을 겪으며 대지진의 전조는 아닌지 두려워한다. 건물 잔해에 사람이 깔려있는 장면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벽장이나 천장의 물체가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한다. 언론 속 지진 정보에 집중하며 긴장하고 두려워한다. 소리나 감각에 예민해져 차가 지나가는 작은 소음이나 흔들림에도 놀라고 불안해한다. 특히 걱정이 많거나 사소한 자극에도 잘 놀라는 이들에게 이 같은 불안감이 더 자주 발생하며, 기존에 협소·광장 공포증이나 우울증 등이 있는 사람은 지진 공포증으로 발전하기 쉽다.
불안이나 불면 증세가 생겼다면 지진 관련 정보에 노출되는 것을 피한다. 공포증은 위험을 계속 곱씹는 과정에서 악화되기 마련이다. 편안한 장면을 상상하며 복식호흡, 요가 등 이완 요법을 훈련하면 스트레스 반응을 낮춰 공포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불안 불면 등의 증세가 심하다면 의료기관을 방문해 두려움과 공포를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정부는 이처럼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어떻게 관리할지 대책을 세우고, 체계적인 심리 지원 시스템을 사회 전반에 구축해야 한다. 지진 경보를 제때 잘 발송하는 것이 중요하듯, 국민들이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정신건강경보도 조기에 체계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