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 금지약물]<1>스포츠, 도핑과 전쟁 중
정부 개입 도핑 사실이 드러난 러시아 선수단은 지난달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육상을 제외한 다른 종목에 러시아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지만 다른 팀 선수단과 팬들은 러시아 선수단에 대한 불신과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리우 갈레앙 공항으로 입국하는 러시아 선수들을 환영하는 러시아인들. 동아일보DB
도핑 전쟁에서 승자는 없었다. ‘악마의 유혹’에 굴복한 많은 선수가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다. 징계 기간을 끝내고 출전한 선수들도 선수들과 관중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당장 도핑에 적발되지 않은 선수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 그리고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등 지난 10년간 채취한 샘플에 대한 재조사를 벌이고 있다. 거의 매달 새로운 도핑 적발 사실이 발표되고, 메달 박탈과 기록 삭제가 이뤄진다. 반도핑 기술의 발달에 따라 예전 같으면 모르고 넘어갔을 도핑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건강한 신체를 망치고, 스포츠 정신까지 훼손하는 도핑은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 국가적 망신당한 러시아
2014년 한 독일 방송의 폭로로 불거진 러시아의 정부 주도 도핑 의혹이 WADA의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지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WADA는 지난해 11월 ‘러시아가 국가 주도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도핑 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WADA를 비롯한 미국 일본 등의 반도핑 기구들은 러시아에 대한 전면 출전 금지 조치를 IOC에 촉구했다.
WADA의 법률대리인 리처드 매클래런 변호사는 “연방보안국(FSB), 선수촌(CSP) 등 러시아 정부의 모든 기관이 동원됐다. 소변 바꿔치기 등 밝혀진 사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의 책임자였던 그레고리 로드첸코프가 5월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 금지약물 3가지를 혼합한 ‘칵테일’을 개발해 러시아 선수 수십 명에게 제공했다”고 폭로했는데, WADA의 조사 결과 이 역시 사실로 드러났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이에 따라 러시아 육상 선수 전원에 대해 리우 올림픽 출전 불가 결정을 내렸다. 여기에는 여자 장대높이뛰기 스타 옐레나 이신바예바도 포함됐다. 올림픽 개막 직전 IOC가 러시아 선수단의 리우 올림픽 참가 여부를 각 종목 경기 단체에 넘기기로 결정하면서 육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하긴 했지만 러시아 선수단을 향한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이 밖에도 도핑 전력이 있는 선수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난에 시달렸다. 중국의 수영 스타 쑨양이 대표적이다. 수영 남자 자유형 200m에서 금메달을 딴 쑨양에 대해 프랑스 대표팀의 카미유 라쿠르는 “그의 소변은 보라색일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쑨양을 제치고 남자 400m에서 금메달을 딴 맥 호턴(호주)은 쑨양을 가리켜 “약 먹은 사기꾼과는 인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도 그의 발언을 지지했다.
○ 한국도 도핑 청정국 아니다
올해 4월 발표된 WADA의 2014 도핑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109개 나라, 89개 종목에서 총 1693명이 도핑에 적발됐다. 러시아가 148명으로 가장 많고 이탈리아(123명) 인도(96명) 순이었다. 종목별로는 육상(248명)이 가장 많았고, 보디빌딩(225명)과 사이클(168명)이 뒤를 이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한국 역시 도핑 적발 건수에서 10위에 올라 있다는 점이다. 그해 한국 국적의 도핑 적발 선수는 43명이나 됐다. 종목별로는 보디빌딩이 36명으로 가장 많았고 수영이 3명, 양궁 골프 역도 레슬링이 각각 1명이었다. 특정 종목에 치우쳐 있긴 하지만 한국도 도핑 청정국으로 보기 힘들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자료에 따르면 보디빌딩은 2008∼2012년 10명대를 유지하다 2013년 9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2014년 38명으로 늘어난 데(WADA 발표와는 수치가 다름) 이어 2015년에도 28명을 기록했다.
수영의 박태환과 배드민턴의 이용대가 대표적이다. 박태환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채취한 소변 샘플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됐다. 병원에서 네비도 주사를 맞은 게 문제가 됐다. 수사 결과 병원 측 부주의에 따른 과실로 드러났지만 국제수영연맹(FINA)은 박태환의 선수 자격을 18개월 동안 정지하고, 인천 아시아경기 메달을 모두 박탈했다. 리우 올림픽 전에 징계가 풀려 겨우 대회에 출전하긴 했지만 훈련 부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 종목에서 예선 탈락했다.
이용대 역시 2014년 초 도핑 테스트 회피 혐의로 1년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가 고의가 없었다는 사유가 참작돼 징계가 철회됐다. 하지만 선수 소재지 정보라는 기본적인 사항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3개월여 동안 극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도핑에서는 모르는 것도 죄가 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