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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안 밝힌채 백남기씨 부검영장 기각… 논란 일자 팩스 보낸 법원

입력 | 2016-09-27 03:00:00

검경 “사인 불명확해 필요” 반발에 7시간 뒤 “진료기록으로 규명 가능”
경찰, 국과수 의견 수렴 재신청 검토… 대책위 “부검은 진실은폐 위한 시도”




 법원이 명확한 사유 없이 고 백남기 씨(69)에 대한 부검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경찰과 유가족 간 대립이 격렬해지고 있다. 경찰은 “자살처럼 사인이 명백한 시신도 영장을 계속 발부했던 법원이 아니냐”라며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법원이 시신 부검을 통한 사인 규명을 막아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 씨는 지난해 11월 14일 민중 총궐기 투쟁대회 당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혼수상태로 치료를 받다가 입원 316일 만인 25일 사망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6일 오전 1시 40분경 백 씨에 대한 부검영장 청구를 기각하며 사유를 한 줄도 적지 않았다. 인터넷 뉴스로 부검영장 기각 보도가 나가고 논란이 일자 그제야 오전 9시경 기각 사유를 팩스로 관할인 종로경찰서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기각 사유는 “1년 가까이 치료를 받아왔고, 진료기록으로 사인 규명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부검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당초 경찰이 시신 부검과 진료기록 확보를 위해 검찰을 통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대부분 빨간 줄을 그어 기각하고 유일하게 진료기록 차트 등에 관한 압수수색만 발부했다.

 이에 경찰은 “사인이 명확하지 않으면 부검이 원칙”이라며 영장 기각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검찰은 진료기록부를 검토해 사인이 확인되지 않으면 영장을 재청구할 계획이다. 재청구한 영장이 기각되면 검경이 더 크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이 부검영장을 기각함에 따라 경찰은 이날 백 씨가 입원했던 서울대병원을 압수수색하고 의료기록을 확보해 의료기록 분석 등 보강수사에 착수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법의관들에게 기록 검토를 요청해 의견을 수렴한 뒤 부검영장 재신청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부검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법의학자들의 견해가 우세하면 영장을 재신청하면서 소명자료로 첨부할 계획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전문의 부검을 통해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 법의학적 소견을 명확히 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의학 전문가들은 부검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박성환 고려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백 씨가 장기간 입원해 부검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부검을 한다면 진료기록, 수사기록을 종합해 사망 원인을 가릴 수 있다”고 밝혔다. 국과수 관계자도 “정치적 이슈와 상관없이 법의학자 입장에선 진실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실체적 사실은 부검을 통해 밝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법원의 부검영장 기각 통계는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 경찰청 관계자는 “최근 영장기각 사례를 수집해보니 숫자가 많지 않고 대부분 돌연사나 추락사로 범죄와 관련성이 없는 경우였다”며 “사인이 법적 쟁점이 되고 있는 백 씨 사건과는 명백히 다르다”고 밝혔다.

 유가족을 비롯한 백남기대책위원회는 부검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백 씨의 큰딸 백도라지 씨는 “아버지를 쓰러지게 하고, (사망) 이후에도 계속 괴롭히는 경찰의 행동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며 경찰의 부검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석운 대책위 공동대표는 “진상규명도 안 되고 책임자 처벌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당분간 장례를 미루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대표자회의 등을 통해 조직을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및 살인정권 규탄 투쟁본부’로 개편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정지영·배석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