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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3만명에 ‘하얀 미소’ 선물

입력 | 2016-09-27 03:00:00

서초구 ‘장애인치과’ 개원 20주년




서울 서초구 장애인치과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이재현 단국대 치과대학장과 윤정태 서초구 치과의사협회장, 서형숙 서초구 보건소 치과의사(앞줄부터 시계 방향)가 22일 서초구 보건소에서 활짝 웃고 있다. 서초구 제공

 “조 구청장, 내 평생의 소원이 하나 있소….”

 1996년 경기 광주군(현 광주시)의 한 행사장. 병색이 완연한 한 노인이 행사에 참석한 조남호 당시 서울 서초구청장에게 다가와 말문을 뗐다.

 “지체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들은 입을 벌리는 것에 대해 극도의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데다 거동이 불안정해 일반 병원에선 진료를 못 해줘요. 일본에서는 20년 전부터 장애인치과라는 걸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없어서…. 그들 입안은 만신창이가 되고 있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장애인치과에 대해 설명하던 노인은 한국 치과의사면허 3호를 받고 평생 한국 의학사 발전에 힘썼던 고 소암(素岩) 기창덕 선생이다. 기 선생의 제안으로 서초구는 당시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던 장애인치과를 1996년 9월 개원했다.

 서초구에서 보건소 내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 치과의사들과 독지가들이 십시일반 비용을 보탰다. 당시 가수 서태지(본명 정현철) 씨도 기부에 동참했다.

 국내 최초 장애인 전문 치과병원인 서초구 장애인치과가 개원 20주년을 맞았다. 기 선생은 개원 4년 뒤인 2000년 타계했지만 그의 뜻을 기리는 지역 치과의사들이 잇따라 재능기부에 동참하며 장애인치과를 계속 이어왔다. 서초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장애인치과에서 봉사를 한 치과의사는 300명이 넘는다. 서초구 내 개업의뿐만 아니라 인접한 강남구와 송파구는 물론이고 심지어 경기 고양시에서도 “기 선생의 뜻을 받들고 싶다”며 힘을 보탰다.

 현재는 치과의사 13명이 순번을 정해 진료를 한다. 김종범 서울꿈나무치과 원장은 개원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이틀씩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다. 그는 “지금이야 마취 의학이 발달해 있지만 당시만 해도 환자를 특수 장치에 고정해야 그나마 진료가 가능했다. 서초구 장애인치과는 국내에서 그런 장비를 처음 갖췄던 곳”이라며 “어릴 때 이곳을 찾은 장애아동이 지금은 건강한 치아를 가진 성인이 된 모습을 보는 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개원 후 소문이 나면서 중증장애인들이 몰려들었다. 지금은 장애인치과가 곳곳에 생겼지만 당시만 해도 장애인들은 일반 치과에서 진료를 거부해 갈 곳이 없었다. 치아가 망가진 중증장애인 자식을 두고 “고기 한 번 먹이는 게 소원”이라며 울던 부모도 있었다. 올해 성인이 된 지적장애인 김모 씨(20·여)는 15년 전인 5세 때 이곳에서 치아배열 이상을 발견해 조기 치료를 받았다. 김 씨의 어머니는 “다른 병원에서 계속 진료를 거부당해 절망했는데 여기서는 비싼 치료를 무료로 해주고 꾸준히 관리해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이곳에서 진료받은 장애인 환자는 3만 명이 넘는다. 서초구는 22일 장애인치과 개원 20주년을 기념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의료진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대부분 개인병원을 운영하며 시간이 곧 돈인 바쁘신 분들”이라며 “헌신적인 봉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