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주 스님. 동아일보 DB
2번의 조계종 총무원장과 중앙종회의장 등을 지낸 송월주 스님(81)이 가장 좋아하는 불교 화엄경 구절이다. 그가 30여 년 전 한 스님의 서예 전시회에서 본 이 구절이 가슴에 콱 와 닿았다.
불교계에선 그를 이판(수행을 위주로 하는 승려)보다는 사판(종단 일을 주로 하는 승려)으로 분류하지만 '이판과 사판의 구별이 없다'는 그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자리는 그가 최근 펴낸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의 기자간담회. 그의 불교계 내 위상을 반영하듯 20여개 중앙 언론사와 지역 언론사가 모였다.
이 회고록은 그가 2011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나의 삶 나의 길-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를 바탕으로 내놓은 것. 출가 이후 1950~60년대 불교 정화운동, 1980년 신군부에 의한 10·27법난, 1994년 종단 개혁 등 굵직한 불교현대사에서 핵심역할을 해온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청담 성철 법정 스님 등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과 총리 등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 70여 명에 대한 회고도 담겼다. 회고록과 함께 사진집 '태공'(월주 스님의 호)과 법문집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도 펴냈다. 다음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1960년대 초 금산사 주지로 내려왔을 때 온 몸이 아파 약을 먹어도 안 들었다. 그 때 '이뭣꼬' 화두를 3개월간 줄기차게 들면서 깨달음이 있었다. 몸도 낫고 눈으로만 익혔던 금강경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을 해도 중심이 생겨 일이 더 잘됐다. 그 때 '마음이 부처'라는 걸 새삼 느꼈다."
"법난은 국가권력이 불교에 개입해 교권 유린을 한 대표적 사례다. 노태우 정부 때 강영훈 국무총리가 종단 인사 30명 초청해 사과했지만 아직 제대로된 진상규명과 보상은 완결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법난 이후 3년 간 해외에 나갔다온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미국을 거쳐 동남아 등을 돌았는데, 태국 미얀마 인도 등 그 때 우리보다 못살던 나라들의 불교 종단 모두 복지에 힘쓰고 있었는데 우리 불교는 미흡했다. 그래서 내가 귀국 후 종단 일보다 지구촌공생회나 나눔의집 같은 NGO 활동에 매진하게 됐다."
-책에 오도송이나 임종게를 남발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는데.
"1970년대 청담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주위에서 임종게를 내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청담 스님 살아오신 것 자체가 임종게인데 별도의 임종게가 왜 필요하냐'며 내지 않았다. 깨닫지도 못한 사람들이 어설픈 오도송 임종게를 내는 것은 지금도 반대한다. 나? 나도 내가 살아온 게 있으니 그 모습 보고 평가해달라."
-요즘 종교가 자꾸 사람들에게 배척되는 경우가 있다. 종교의 역할을 말씀하신다면.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해 하는 것이 행복이다. 저도 지구촌공생회 활동을 위해 해외에 나가게 되면 비행기 타기 전부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그게 피곤하면 불행하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은 자신의 행복이 될 수 없다. 하는 일에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감 느낄 때가 진정 행복이다. 총리 장관이 아니고 면장을 하더라도 주민 복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즐겁다고 느끼면 행복한 거다."
-불교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특히 나눔의집을 세워 위안부할머니 안식처를 마련했는데 최근 한일 양국 합의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토대로 건국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는 24년 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실태 폭로한 것을 계기로 나눔의집을 세워 할머니들의 쉼터를 마련해드렸다.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위안부 할머니 보상 문제 등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역대 정권 중에선 가장 세게 얘기하고 합의까지 이끌어낸 점은 평가한다. 하지만 소녀상 이전은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 문제는 더 지켜보겠다."
그는 2004년부터 지구촌공생회를 만들어 빈곤국가에 식수용 우물을 파주고 학교를 지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해외에 나가면 1인당 식대를 10달러 이하로 정해놓고 그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한다. 또 호텔도 싼 호텔이 없어 예산을 초과하면 자비로 부담한다. 지구촌공생회의 한 관계자는 "그만큼 독지가들이 후원한 돈을 아껴 쓰는 것이 체질화된 분"이라며 "신뢰 속에서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늘 하신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은.
"많은 일을 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지구촌공생회를 통해 빈곤국가에 2300여개의 우물을 파 깨끗한 물을 공급해주려고 했는데 아직도 16억 명의 인구가 식수 부족 상태다. 지금 하던 일을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선 목표는 미수(88세)까지 이 일을 하는 거고 그 뒤에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계속 노력하겠다. 3년 뒤에는 이 회고록 증보판도 내려고 한다. 아직도 못한 얘기가 많다. 허허."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